[장준하씨 사건 어떻게 조사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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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대통령 직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지난 7일 장준하(張俊河)씨 의문사 사건 관련자 전원을 소환, 현장 조사를 벌여 張씨 시신 발견 지점을 지형상 실족사 가능성이 희박한 지점이라고 확인하기까지에는 항공 촬영과 사고 현장 모형물 등 과학적 기법이 동원됐다.

◇ 과학적 기법 동원〓사건 직후부터 유족과 민주화 인사들은 "시신의 상태와 지형적 여건 등으로 보아 張씨는 당국 발표대로 실족사한 게 아니다" 며 의문을 제기해 왔다. 위원회의 임무는 과거 언론을 통해 제기됐던 의혹들을 과학적으로 입증해 내는 것이었다.

위원회는 우선 지난 4월 군 당국의 협조를 얻어 경기도 포천군 이동면 도평리 약사봉에 대해 사고 이후 27년 만에 처음으로 항공 촬영을 실시했다. 검찰이 발표했던 추락 추정 지점은 높이 14m에 경사 70도로 일반인들의 접근이 불가능한 지형이다.

위원회는 지난 5월 항공촬영 비디오와 사진을 바탕으로 너비 1.5m, 폭 0.8m의 현장 모형을 만들어 실험했다.

이후 지난달 말에는 전문 산악인들을 대동해 추락 추정 지점 접근을 시도했으며 이 때 산악인들은 등산용 자일을 몸에 묶고서야 그 지점에 닿을 수 있었다.

◇ 장준하씨 사건은〓장준하씨는 1975년 그를 따르던 인사 네명과 함께 약사봉 등반에 나섰다가 숨졌다. 일행이 계곡에서 점심을 준비할 때 張씨는 "바람이나 쐬고 오겠다" 며 산에 오르기 시작했고 뒤늦게 도착한 金모(67)씨가 張씨의 뒤를 쫓아 갔다가 "선생님이 발을 헛디뎌 다치셨다" 며 일행에 비보를 전했다.

張씨는 해방 전 광복군 소속으로 독립운동을 했으며 53년 월간지 '사상계' 를 만들어 반독재 운동을 벌였다. 58년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는 고(故)함석헌 선생의 글을 사상계에 실었다가 필화(筆禍)를 겪기도 했다. 이후 61년 군사 쿠데타 뒤에는 앞장 서서 박정희 독재 반대운동을 펼치면서 수차례 옥고를 치렀다.

성시윤 기자

<장준하 사건 조사 일지>

1.4월 27일 : 사건 발생 이후 27년 만에 사고 현장인 경기도 포천군 약사봉 일대 첫 항공 촬영(군 당국 협조).

2.5월 : 전문가에게 의뢰해 폭 1.5m 크기의 사고 현장 시뮬레이션 모형을 제작해 실족 지점 접근 가능성 여부 검토.

3.5월 31일 : 전문 산악인 및 목격자를 동반해 '실족 지점 접근 불가능' 판단.

4.6월 7일 : 사고 목격자 및 당시 출동 군.경 및 張씨 등반 동행자들과 현장 재조사, 시신 발견 지점 확정해 '실족사 가능성 희박한 것' 으로 내부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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