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위석 칼럼] 김정일위원장의 유람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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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금강산 유람선 뱃길이 이어진 지 2년7개월 만에 7월 1일부터 완전히 다시 끊기고, 북한 장전항에 있는 해상호텔도 철수한다는 소리가 들린다. 북한 정권은 이에 즈음해 애먼 뱃길에 색다른 유람선으로 뱃놀이를 찾아나섰다.

그들의 국영 상선들로 하여금 남한 영해와 군사적 북방한계선(NLL)을 '김정일 장군님이 개척한 항로' 라며 잇따라 침범하게 한 것이다.

정주영 전 명예회장이 금강산으로 간 까닭은 거기에 장기적으로 돈이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일 것이다. 김정일 위원장은 많은 국내외 평론가들이 분석하는 바로는 돈은 남한을 제외하면 세계 어디에서도 나올 데가 없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돈을 빼면 그의 안중에 남한 정부는 남는 것이 없다고 한다.

정주영의 위대성은 그가 천재적 환상가와 다부진 실천가를 철저하게 겸한 데 있었다. 김정일의 위대성은 그가 어디까지나 환상가 일변도라는 점에 있을 것이다. 정주영이 환상으로 벌리고 실천으로 오므리는 사업가라면 김정일은 환상으로써 환상을 벌려 나가는 나르시스적 정치가일까.

3년 전 현대가 금강산사업을 시작했던 것과 국제금융계가 현대그룹에 대한 대출 잔액을 급하게 줄이기 시작한 것은 시기가 일치했다는 말을 들었다. 이 일치는 김정일의 봉으로 스스로 빠져들어가, 돈 될 리 없는 프로젝트에 돈을 퍼붓는 현대 그룹의 전도(前途)를 불신했던 데 연유했을 수 있다.

재주는 중국 사람이 부리고 돈은 곰이 먹는 것을 상상할 수 없듯이 현대라는 봉이 도리어 북한에서 돈을 벌어가는 것을 김정일 위원장이 용인할 리가 없다. 한편 남한의 금강산 관광객 수는 점점 줄어만 갔다. 갔다 온 사람들의 입에서 즐겁지 않더라는 소문이 퍼졌다. 김정일과 정주영의 금강산 사업이 실패한 까닭은 바로 관광 소비자의 이런 부정적 판단 때문이다.

금강산을 포기한 다음, 이전의 현대그룹 기업들이 금강산을 제외한 여러 사업에서 지금 크게 활력을 되찾아가고 있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여기에 중요한 교훈이 있다. 절대로 현대가 포기한 금강산 사업을 남한의 정부나 기업 연합체가 맡아 계승해서는 안 된다. 만일 계승하면 정부든 기업이든 현대가 금강산 때문에 당면했던 파국을 상속 받을 것이다.

이 사업을 계승할 적임자는 북한이다. 자기 돈과 책임으로 남한 사람을 포함해 세계의 관광객을 상대로 장사를 벌여야 할 것이다. 관광객을 감시하는 노릇을 포기하고 업자로서 관광객에게 염가로 최선의 서비스를 바쳐야 될 것이다.

남한 정부는 남한 관광객의 자유로운 출국을 전적으로 보장하고 장려하는 것으로 가장 따뜻한 '햇볕' 을 보내줄 수 있다. 북한 관광회사와 무역회사의 남한 내 사업 활동도 허가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뱃길뿐만 아니라 육로와 항공로 쪽도 장차는 열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 것이다.

김정일 위원장의 남한 영해와 군사 한계선 침범 뱃놀이는 또 하나의 소규모 겁쟁이 놀이(chicken game)다. 겁을 먼저 먹는 사람이 진다. 그 상대는 김대중 대통령으로 보인다. 가장 확실하게 이기는 방법은 거기에 응하지 않는 것이다.

남한 정부는 이 침범 직후에 북한이 요청하면 언제든지 북한 상선의 남한 영해와 NLL 통과를 허가하겠다는 제안을 도발자의 등에 대고 황황히 올렸다. 이 정도로 그친 것은 대포를 쏘거나 돈을 주겠다고 나서는 최악의 겁내기보다 훨씬 나았다고 할 수 있다.

김대중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과의 겁내기 놀이에 말려들어가 어떤 식으로든 지게 되면 그는 국민과 동맹국의 신뢰를 잃게 될 것이다. 이것은 그에게 최후의 실패가 될 것이다. 이 게임에 말려 들지 않는 것은 소극적 방도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적극적 방도는 국방을 최우선적으로 강화하고 남한의 국방상의 주적은 북한이라는 것과, 절대로 김정일 위원장에게 공짜로 돈을 주는 봉 노릇은 하지 않겠다는 것을 金위원장이 분명히 알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 놓고 金위원장의 서울 답방을 기다리는 것이 남북간의 평화를 위해서 옳다.

강위석 'emerge새천년'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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