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강자의 심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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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9면

제4보(32∼46)=천야오예 9단은 32부터 죽죽 몰아 깨끗이 버리는 쪽을 선택했다. ‘참고도1’처럼 움직여도 죽지는 않겠지만 악전고투는 피할 수 없다. 그 고생에 비할 때 실전 38까지 중앙으로 활짝 편 모습은 간명하고 시원하다. 그렇다면 백은 잘된 것인가. 애당초 버리고자 했던 돌을 조그맣게(?) 버렸으니 잘됐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우하 일대를 빙 돌아간 흑의 확정가는 줄잡아 50집이다. 뒷맛이 전혀 없는 확정가의 위력을 생각하면 흑도 잘됐다고 말할 수 있다. 절묘한 타협이었던 거다.

구리 9단은 하얗게 서리가 덮여가는 중앙을 놔둔 채 저 멀리 구석진 39로 향한다. 응수타진이다. 흑▲는 ‘버린 돌’이었지만 아직 잔명이 있다. 그걸 이용해 이득을 취하려 한다. 이때부터 판 위에선 두 사람의 기세가 치열하게 충돌한다. 어찌 보면 ‘잔돈’이고 눈곱만 한 차이인데 그걸 사이에 두고 처절히 맞서며 일대 살육전으로 치닫는다. 승부란 나중에 반 집에 목을 매는 것. 그보다는 기회가 있을 때 싸운다는 것이 모든 강자들의 공통된 심리다.

40·42는 절대 귀살이를 주지 않겠다는 수. 43이 ‘참고도2’를 엿보자 그것 역시 불가하다며 44의 강수로 나간다. 45부터 전투 개시.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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