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글쓰기 아직 서툴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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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국내 예술 및 인문학 분야에서는 처음으로 세계적인 학술지 평가 기관인 과학정보기구(Institute for Scientific In formation, ISI)의 색인에 등록된 잡지가 나왔다.

유네스코한국위원회가 발행하는 한국학 계간지 '코리아 저널(Korea Journal)' 이 그것으로, 발간 40년 만의 경사다. ISI는 지난 1년간 세계 각국의 학술지 약 2천여 종을 심사한 결과, 코리아 저널 2001년 봄호부터 색인에 등록하게 됐다고 최근 유네스코한국위원회에 통보해 왔다.

코리아 저널이 이처럼 '세계로 열린 한국학의 창' 으로 성장한 데에는 숨은 얼굴의 역할이 컸다. 출판팀장인 이정현(45.사진)씨다. 한국외국어대 불어과를 졸업하고 1979년 유네스코한국위원회에 입사한 이팀장은 지금은 폐간된 프랑스어 학술지 '르뷔 드 코레(Revue de Core)' 를 거쳐 줄곧 이 잡지의 편집에 관여해 왔다.

"코리아 저널이 창간된 1961년부터 계간으로 전환하기 전인 90년까지 '월간지 시대' 에는 주로 정치.경제 중심의 시사잡지나 한국 알리기 가이드북의 성격이 강했습니다. 91년이 돼서야 본격적인 한국학 학술지로서의 위상이 섰지요. " 이팀장이 과장이란 직함을 받고 이 잡지에 관여하기 시작한 게 91년이니 그녀와 코리아 저널은 운명공동체인 셈이다.

이팀장은 학자들 사이에서는 '악명' 높은 완벽주의자로 통한다. 한편의 논문이 영어로 옮겨져 잡지에 실리기까지 대여섯번의 교열과 편집을 감내해야 겨우 이름 석자를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국에서 공부할 기회가 많은 사회학이나 자연과학에 비해 인문학 분야는 아무래도 영어가 서툰 편이지요. 그러다보니 우리말 원고를 영어로 옮기는 과정이 필요한데, 이게 쉽지 않아요. 세계의 한국학 학자들이 볼 수준의 고급영어로 만들기 위해서는 원문 대조부터 철저히 해야 신뢰를 얻을 수 있습니다. "

그런 노력의 결과 코리아 저널은 이번에 가장 신뢰받는 한국학 잡지로 공인을 받았다. 코리아 저널은 현재 2천3백부를 발행해 세계 각 대학의 도서관과 국공립도서관, 한국학 관련 연구 단체 등에 배포한다. 2년마다 편집위원을 교체하는데 현재는 서울대 송호근(사회학).고려대 이승환(철학) 교수 등 11명이 맡고 있다.

국내의 내로라 하는 학자들의 글을 다루고 있지만 이팀장은 쓴소리를 빠뜨리지 않았다. "우리 학자들의 글은 쓸데 없는 반복이 심하고 엉터리 주석과 색인이 많아요. 그래서 교열자(외국인)와 편집인들이 몇 단계에 걸친 다듬기와 원문 대조를 하지 않고서는 낭패 보기 십상이지요. "

한마디로 논문 쓰기의 국제표준에 훨씬 못미친다는 얘기인데, 그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코리아 저널이 세계 학계에 신뢰받는 학술지로 이름을 올린 것은 이팀장의 프로 근성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언젠가 영어로 된 한국학 용어사전을 만드는 게 이팀장의 꿈이다.

정재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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