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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재 신드롬 문제점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50면

분당에 사는 주부 J씨(34)는 얼마 전 세 돌이 갓 지난 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찾아 영재 판별 검사를 받아보았다.

"언어 능력이 조금 좋은 것 같네요. " 담당 의사의 설명은 간단했다.

J씨는 "요즘 주부들 사이에서는 영재교육이 화제" 라면서 "우리 아이의 지능은 얼마나 될 지 궁금해 한 번 받아봤다" 고 말했다.

'혹시 우리 아이가 영재가 아닐까?' . 부모들은 한번쯤 이런 생각을 해본다고 한다. 부모들은 갑자기 아이의 입에서 튀어나온 재치있는 언어표현에 놀라고,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제법 멜로디를 살려 피아노를 치는 것에서 감동받기도 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영재' 에 대해 잘못 알려진 상식들로 부모나 아이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교육개발원 영재교육연구실장 조석희 박사는 "영재성은 분명 계발돼야 하는 것이지만 그것은 무엇보다도 '타고난 능력' 을 가리킨다" 면서 "보통 아이를 얼마든지 훌륭한 전문가로 키울 수는 있지만, 영재성을 타고 나지 않은 아이를 교육시켜 영재로 만들 수는 없다" 고 강조했다.

'당신의 자녀를 영재로 키우세요' '당신의 자녀도 영재가 될 수 있다' 는 말처럼 '영재' 의 개념을 왜곡시키는 말도 없다는 것이다.

학습장애아동 전문가 김문주 박사(조이투런 대표)도 "언제부턴가 영재교육이 마치 평범한 아이를 영재로 키우는 법으로 심하게 왜곡되고 있다" 면서 "영재교육기관에서는 IQ 130 이상을 교육 프로그램에 포함시키는데 일부 지능검사에서는 점수가 후해지는 경향도 있었다" 고 지적했다.

조박사는 영재교육의 필요성 자체를 반대하지 않는다. 영재교육은 일반 아동과 발달 수준이 다른 영재에게 적절한 교육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필요한 것.

그는 "아이가 확연하게 영재적 특성을 보이면 판결검사를 받아야 하지만 보통 아이를 영재로 만들려는 노력은 건강한 아이를 문제아로 전락시킬 수 있다" 고 말했다.

'현명한 부모는 아이들을 느리게 키운다' 에 이어 최근 '느림보 학습법' 이라는 책을 출간한 연세대 소아정신과 신의진 교수는 요즘의 '영재신드롬' (아이를 영재로 만들지 않으면 안될 것처럼 몰아가고 있는 현상)이 "새로운 형태의 아동학대" 라고 일침을 놓는다.

신교수는 " '어릴 때부터 자극을 주면 머리가 좋아질 수 있다' 는 주장이 이 신드롬을 부추기고 있다" 면서 "사실 우리 환경은 굳이 무슨 카드 보여주기 등으로 자극을 주지 않아도 될만큼 이미 수많은 자극 속에 놓여 있다" 고 덧붙였다.

신교수는 또 "부모는 내 아이가 영재에 속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불안해하고, 아이는 너무 일찍 경쟁적인 환경에 노출돼 '더 뛰어나야 한다' 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게 되는 것도 영재 신드롬의 문제" 라고 덧붙였다.

김박사는 "아직 국내에서는 영재교육의 효과와 후유증 등이 제대로 검증되지 않았는데도 영재교육기관이 성업을 이루고 있다" 고 지적했다.

영재든, 보통 아이든 타고난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면서 건강한 아이로 성장하는데는 무엇보다 부모의 소신이 가장 중요하다.

조박사는 "대부분의 부모들은 욕심만 갖고 있을 뿐 사실상 교육에 대한 종합적인 안목을 갖고 있거나 공부하는 자세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 면서 "엄마는 아이에게 글자나 숫자 하나를 가르치기 위해 에너지를 쏟기보다 책 보기.텔레비전 보기.전화 받기.사람 대하기 등 일상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야 한다" 고 말했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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