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상선 남한 흔들고 '항로 개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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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북한 상선(商船)의 잇따른 제주해협.북방한계선(NLL)침범 사태는 5일 일단락됐지만 여진(餘震)은 남아 있다.

특히 정부와 군 당국에는 화해협력 분위기 속에서도 언제든 불거질 수 있는 북한의 도발행태에 효과적으로 대처해야 할 숙제를 남겼다.

◇ 북한 이익 본 손익 계산서=북한은 대홍단호를 비롯한 간판급 상선을 총동원한 이번 사태로 제주해협 단축항로를 '개척' 한 '경제적 실리' 를 얻었다. 또 민간선박을 투입, 강경대응을 어렵게 함으로써 우리 군 당국을 곤경에 빠뜨렸다.

국방부 당국자는 이날 브리핑에서 "국민 여러분께 걱정을 끼쳐드려 죄송하다" 며 고개를 떨구어야 했다.

우리로선 정부의 햇볕정책 추진에 걸림돌이 늘어났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벌써부터 대응방안의 적절성을 둘러싸고 여야가 갈리고, "그렇게 퍼줬는데도 또 도발이냐" 는 비판여론도 높아졌다.

지난 3월 5차 장관급 회담 무산 이후 중단된 당국대화를 재개하기 위해 비료 20만t을 지원하는 공을 들였지만, 마침 최종분 비료운송 선박이 출항한 5일 분위기는 썰렁해졌다.

이에 대해 통일부 당국자는 "화해협력 정책에 대한 비판고조가 대북지원 반대여론 등으로 이어질 경우 북한에도 결코 유리하지 않을 것" 이라며 북측이 잃은 것도 적지 않을 것으로 풀이했다.

북한은 또 NLL지역을 다시 쟁점화함으로써 향후 미국과의 대화에서 정전(停戰)체제의 대체 등 문제를 제기할 전기를 마련했다. 물론 북한이 6일로 잡힌 군사정전위 비서장급 회의에 호응하는 등 대화의 단초를 마련한 점은 결과적으로 긍정적 신호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성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 재발 가능성은 없나=대홍단호는 5일 새벽 우리 해경정과의 교신에서 "영해를 침범하지 않겠다" 고 밝혔다.

그렇지만 군 당국은 "북한이 선박을 재투입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며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다.

완패로 끝나 북한 군부가 충격에 빠졌던 1999년 6월 서해 연평해전 때와 달리 이번에는 북한 스스로 철수했다는 점에서 언제든 다시 올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북한이 앞으로 미국과의 대화전개나 남측의 대북태도를 지켜보다 적절한 시기에 또다시 이 카드를 사용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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