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리더십 위기와 국정 개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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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김대중 대통령은 오는 13일 '국정개혁' 구상을 발표한다고 한다. 물론 최근에 있었던 초.재선 민주당 의원들의 연쇄성명 파동과 당내 의원 워크숍 결과에 따른 국민여론 비등에 대한 반응이다.

그런데 문제는 민주당 의원들에 의한 '인적쇄신' 과 '비선조직 제거' , 그리고 '당의 위상과 권한의 강화' 및 '국정시스템 개선' 주장의 속내가 대통령의 통치방식과 당 운영관리체계의 현재적 결과에 대한 불만과 불안인데, 이러한 우회적 표현의 본질을 대통령이 과연 인지하고 인정하고 있느냐다.

만일 金대통령이 민주당 내의 최근 사태와 주장이 'DJ리더십 위기' 의 문제가 아니라, 당내 세력간의 권력 및 충성경쟁이며 일시적 불만의 표출 정도라고 보면서 국정개혁안을 구상하고 있다면, 이는 당의 수준이 아닌 국정의 총체적 위기로 치닫는 길임을 걱정하는 국민이 적지 않다.

'DJ리더십 위기' 조짐에 대한 학계와 언론 및 사회 일각에서의 지적은 이미 대통령이 노벨평화상 시상식에 참석하려고 출국한 지난해 12월 중순부터 시작됐고, 귀국 후의 '대대적인 국정쇄신' 에 거는 기대가 컸었다.

그러나 그 후 국정쇄신책은 '4대 개혁 완수' 라는 정책수행적 차원의 구호 아래서 희석돼 버렸고 정당체계를 포함한 국정 전반에 걸친 제도적 혹은 시스템 변화 및 개혁과는 거리가 먼 일로 돼갔다. 여.야당 간의 생산적 경쟁구조를 수립하려는 노력보다 국회 의석 수와 외양적 세력규모에 의존한 '강한 정부.여당론' 혹은 '의원 꿔주기' '3당 정책연합' 등 과거 권위주의 체제 아래에서 행해온 대응방식의 틀에서 한치도 벗어나질 못했다.

그 결과는 3.23 개각을 낳았고, 결국은 4.26 지방선거시 집권여당 참패를 겪었던 것이다. 안동수 장관 임명파동은 집권 민주당 구성원들에게 'DJ리더십 위기' 를 일깨워준 상징적 계기였다. 그래서 여.야당 지지성향을 지니고 있지 않은 국민들까지도 당정 부문에서의 총체적 쇄신론 주장에 가담돼 있는 것이고, 어떤 국정개혁안이든 DJ리더십의 총체적 쇄신 없이는 무의미한 것이라 믿고 있다.

이미 80년 전의 저술에서 막스 베버는 현대정치에서의 바람직한 정치리더십의 덕목으로 책임감, 판단력, 원대한 비전과 폭넓은 식견을 제시한 바 있다. 그런데 여기서 '책임감' 거론의 핵심은 동기의 순수성을 강조하는 '심정윤리' 뿐만 아니라, 행위와 결과에 대해 책임지는 '책임윤리' 였다. 그리고 '판단력' 을 흐리게 만드는 것은 권력욕에 지배된 '허영심' 과 오만이라고 했었다.

민주당 의원들 스스로가 '위기' 라고 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국정개혁 구상의 핵심은 DJ리더십의 쇄신에 바탕을 둘 때 의미를 갖게 됨을 시사한다. 민주적 리더십의 구축과 실행을 향한 진정한 혁명적 국정 개혁안이 제시되지 않을 경우의 국민적 실망과 '정풍쇄신' 같은 파동의 재연을 국민들은 우려하고 있다.

당정 운영에서 시스템 이론 적용 및 권력분점 인정과 정책결정 참여에의 제도화 등 여러 가지 안이 거론되겠지만 시간이 충분치 않다.

金대통령만이 가장 손쉽고 효과적으로 행할 수 있는 리더십 개선책은 여야를 구분하지 않는 전 대상에 대한 대통령의 정치커뮤니케이션 채널 구축을 통한 초당적 국가지도자의 위상확보책이라고 본다. 형식적인 여야 총재회담이나 '맹목적 충성파' 와의 정례회의보다 야당 중진 리더들과의 대화와 설득, 그리고 더 나아가 초당적 각료인선 가능성까지 고려해 보는 일이다.

결국 낮은 수준의 우리 정당체계를 발전시키기 위한 국가지도자로서의 공헌을 국민은 열망하고 있기에, 金대통령은 '위기' 극복의 마지막 기회의 장에 서 있다고 하겠다.

집권여당의 입장에서 볼 때도 현실은 야당과의 상호연계와 상생(相生)의 틀 속에서만 당 재건과 국민적 신뢰회복을 기약할 수 있다.

민주당 혼자만의 당내 권력구조 변경과 당정 협조체계 강화, 혹은 지역주의에 기반하는 힘의 관성만으로는 대선준비는커녕 현실타개가 전혀 여의치 않다. 그래서 'DJ리더십 변신' 의 결단은 우리 정당제도의 발전을 위해서뿐 아니라 여당의 생존전략에도 절대적인 필요전제라고 본다.

김동성 중앙대 교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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