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평] 빗나간 에너지 예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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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빗나간 예측이 세계 역사 속에서 오히려 좋은 결과를 가져다 준 사례들이 적지 않다. 영국의 맬서스는 세계인구가 기하급수로 증가하는데 식량생산은 산술급수로밖에 증가할 수 없어 인류는 곧 식량부족으로 큰 재난에 빠지리라고 예언한 바 있다. 그러나 그러한 예언은 빗나갔으며 오히려 인류는 충분한 식량을 생산하게 되었다.

***30년 전부터 원유難 경고

물론 이 지구상에는 아직도 많은 지역에서 사람들이 가난과 기근으로 고통받고 있다. 그러나 이는 식량생산의 부족에 기인하기 보다 생산된 식량을 효율적으로 나누는 적절한 분배방식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산기술의 발전, 즉 녹색혁명이 식량생산을 획기적으로 증가시켜 주었으나 인류는 아직도 평화적이고 효율적인 배분방식과 사회제도를 만들어내는 데 실패해 21세기에도 일부 지역의 가난과 기근은 지속될 전망이다.

30년 전에도 가공할 만한 경고성 예측이 남발되었음을 우리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에너지 위기가 닥쳐오자 많은 에너지 경제학자들은 인류는 곧 에너지 가격의 급상승과 석유자원의 고갈로 큰 어려움에 빠지리라고 예측했다. 그들은 당시로부터 20년 후에는 지하에 묻힌 원유는 전부 고갈돼 버릴 것이므로 새로운 에너지 자원을 개발하지 않고는 인류가 큰 재앙을 면키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들의 예측대로라면 지금 인류는 이미 지하에 있는 원유 매장량을 다 소진한 후 새로운 에너지 자원의 개발에도 실패해 큰 재앙에 빠져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원유의 매장량은 30년전 알고 있었던 양보다 늘었으면 늘었지 줄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에너지 경제학자들의 예측은 빗나갔지만 아마도 그들의 경고는 우리로 하여금 그 문제를 풀어가는데 도움을 주었는지도 모른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났을까? 에너지난이 경고되자 에너지 가격이 치솟기 시작했다. 높은 가격은 수요를 크게 억제했다. 에너지 소비성향이 높아 에너지 재난이 올 경우 가장 혹심한 피해를 보리라던 미국의 일인당 소모 에너지량이 지난 30년간 매년 1.5%씩 감소해 왔다는 통계가 보고되기도 한다.

또한 원유가격이 상승함에 따라 유전의 개발과 원유의 공급이 크게 증가했다. 원유가격이 쌀 때에는 찾아 낼 엄두도 내지 못하던 바닷속 대륙붕에 묻혀 있는 유전이 개발되고 비록 땅속이라 하더라도 개발비용이 많이 드는 석유도 쓰여지기 시작했다. 원유가격은 다른 물건의 가격보다 이자율만큼 더 빨리 오른다는 것이 이론적인 설명이다.

왜냐하면 원유가격 상승률이 이자율보다 낮으면 원유를 지금 캐내 현금화하여 이자소득을 올리는 것이 유리할 터이고, 만일 원유가격이 내년에 이자율보다 더 높이 오를 것으로 예상되면 원유를 오늘 캐지 않고 두었다가 내년에 캐내는 것이 유리할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다시 원유가가 배럴당 30달러를 넘어서고 있다. 에너지 다소비적 산업구조와 생활 패턴을 지닌 우리로서는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에너지 가격이 장기적으론 다른 물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빨리 상승할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매번 원유가가 갑자기 상승할 때마다 그저 걱정만 늘어놓을 뿐 뾰족한 해결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 또한 납득이 간다.

우리가 유전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또 새로운 대체 에너지를 만들어 낼 만한 기술 수준을 지니고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은 가격이 시장에서 제 구실을 하게 해 에너지 사용의 효율성을 높이는 길뿐이다.

***가격구조 단순화 등 시급

우리는 몹시 복잡한 에너지 가격구조를 갖고 있다. 에너지 종류별로, 사용용도에 따라, 지역에 따라 똑같은 에너지 열량에 대해 제각각의 가격을 매기고 있다. 에너지 가격으로 산업구조문제.교통문제.물문제 심지어 소득분배문제 등까지 해결하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정책들이 에너지 가격을 왜곡시켜 결국 에너지 사용의 비효율화를 초래하고 있다. 에너지 가격으로는 에너지 부족문제만을 풀어가려는 가격 단순화 작업이 시급하다. 인류는 결국 대체에너지를 만들어 내는데 성공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까지는 주어진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사회제도를 확립해 가야 한다. 에너지에 대한 빗나간 예측들이 결과적으로 에너지 문제해결에 도움을 주는 날을 고대해 본다.

이영선 연세대 교수 ·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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