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파업 비상] "12일 강행"에 재계 긴급회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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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재계에 총파업 비상이 걸렸다. 민주노총 등 노동계는 올 상반기 임금.단체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 오는 12일 총파업 투쟁을 선언하고 사업장별 파업찬반투표 실시등 절차를 밟고 있다. 재계는 대화와 강경대응이라는 화전(和戰)양면책으로 응수하고 있다. 김창성 경영자총협회장 등 경제5단체장은 4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긴급 노사간담회를 열고 노동 현안에 대한 공개토론회를 제의했다. 그러나 "불법 과격 시위에는 가능한 민.형사상 법적 조치와 직장 폐쇄 등으로 대응하겠다" 는 입장도 밝혔다.

◇ 분규 줄었으나 강도 높아져〓노동부 집계에 따르면 올들어 발생한 노사 분규는 55건, 참가 인원은 총 9천여명으로 지난해의 60% 수준(건수 기준)이다.

하지만 파업의 전 단계인 조정신청은 이미 4백26건으로 지난해(4백83건)와 거의 맞먹는다. 총파업 시점에 파업시기를 맞춘 사업장이 많다는 뜻이다. 실제로 민주노총은 "12일 총파업에 금속노조 1백14곳, 공공노조 35곳 등 2백여개 사업장이 동참할 것" 이라고 공언하고 있다.

이미 파업에 들어갔거나 실시 예정인 사업장 중에는 자동차.항공.화학.금속 등 파급효과가 큰 기간산업이 많다는 점도 눈에 띈다. 대우자동차 근로자들이 고용안정을 위해 미국 제너럴 모터스(GM) 인수 반대 투쟁에 나선 것이 대표적 사례.

대한항공의 조종사노조와 아시아나항공의 일반노조, 공항관리공단 정비사, 화섬업계(효성.태광.고합 등), 화학업계(여천NCC.한화석유화학 등) 등이 쟁의 대열에 섰거나 그럴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기업인들의 입장은 다급하다. 효성과 여천NCC 현황 보고를 접한 경제5단체장들은 "이러다가 나라가 망하겠다" 고 탄식한 것으로 전해졌다. 효성은 울산 공장의 열흘간 파업으로 3백34억원의 피해를 봤다고 4일 추산하는 등 파업에 따른 직.간접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 대화 여지 적어〓김영배 경총 전무는 "효성 울산공장 등 최근의 노사분규는 시설을 불법 점거하고 관리직을 감금하는 등 불법.폭력 시위" 라며 "조정신청 등의 절차를 무시한 쟁의도 크게 늘었다" 고 주장했다.

재계는 정부가 공권력 개입을 꺼리고 있다는 점에 불만이다. 특히 대우차 노조 과잉진압 사건으로 혼이 난 경찰이 명백한 불법.폭력 시위조차 거의 방관하고 있다는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H사 관계자는 "노조가 공장을 해방구로 정하고 각종 무리한 요구를 쏟아내는 데도 경찰은 소극적이고, 노동 관련 기관들은 빨리 양보해 분규를 타결하라고 회사측에 압박하는 일이 잦다" 고 말했다. 한 일본계 기업 임원도 "투쟁지향적인 노동운동에 대해 한국 정부가 공정한 법 집행을 하려는 의지가 부족한 것 같다" 고 말했다.

노동계가 통상 하반기에 꺼내는 '제도 개선 투쟁' 이 이번에는 총파업 이슈로 앞당겨진 것 역시 문제를 꼬이게 만들었다.

심갑보 대한상의 노사인력위원장은 "복수 노조 문제는 노사정 합의에 따라 5년간 연기하도록 입법화했고 모성보호 문제는 국회에 계류 중이며 법정근로시간 단축, 비정규직 보호문제는 현재 노사정위원회가 협의 중" 이라면서 "이런 문제를 투쟁의 이슈로 삼는 것은 법치에 어긋난다" 고 말했다.

파업 선봉에 서는 대기업 고임금 사업장이 예년보다 늘어난 것도 협상의 여지를 좁혀놨다. 경기도 어려운데 노조의 임금인상 요구 폭은 커서 협상이 쉽지 않기 때문. 경총이 연초 내세운 올해 임금인상 가이드라인 3.5%와 노동계 요구(12% 인상)의 간격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외국계 기업 지원기관인 옴부즈만 사무소의 김완순 대표는 "우리 경제의 살길은 수출하고 외자 들여오는 일인데 이처럼 적대적이고 불합리한 노사 환경 아래서 외국인 바이어와 투자자들이 한국 제품과 기업을 어떻게 바라볼지 생각해 봐야할 것" 이라고 말했다.

홍승일.김태진 기자

사진=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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