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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왕의 유전자를 찾아 (4)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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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극우 민족주의 정당 영국국민당(BNP)을 이끌고 있는 닉 그리핀 당수

영국인, 그들은 과연 누구인가? 그들의 뿌리는 무엇이며 유전적으로 어떻게 구성되었는가?

다민족 시대인 21세기인 지금에도 이 문제는 비단 이를 생물학적으로 연구하는 학계뿐만 아니라 정치계에서도 뜨겁게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는 주제다. 왜 정치적인 문제가 되느냐고?

영국인의 혈통은 뜨거운 논쟁거리

최근 영국정치에 발판을 구축한 영국국민당(BNP, British National Party)이 있다. 영국의 극우민족주의 소수정당으로 영국의 파시즘을 대표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이 당을 이끌고 있는 당수가 닉 그리핀(Nick Griffin)이다. BBC에 출연해 공개적으로 이슬람을 비난해 유명해진 정치인이기도 하다. 그는 BNP가 영국의 ‘토착민(indigenous people)’을 대표할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

그는 미국과 캐나다를 포함한 북아메리카와 뉴질랜드의 원주민을 현대의 잉글랜드인, 스코틀랜드인, 아일랜드인, 그리고 웨일스인과 비교하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

다시 말해서 미국이나 뉴질랜드의 경우 소위 토착민을 대표하는 당이 있듯이 자신도 영국의 ‘토종’을 대표하는 정당의 당수가 되겠다는 취지의 발언이다.

그러나 예를 들어 미국의 인디언, 뉴질랜드의 마오리족과 같은 토착민을 대표하겠다는 말이 아니다. 마치 히틀러가 게르만족의 순수혈통을 지켰듯이 자신도 영국의 순수혈통을 대표하는 당수가 되겠다는 내용이다.

영국인 유전적으로 다양해

미국이 여러 인종들이 모여 사는 멜팅 팟(melting pot)이라면 영국은 여러 인종들의 유전자가 섞인 멜팅 팟이다. 영국은 역사상 주인이 수 없이 많이 바뀐 대표적인 나라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영국은 복잡한 족속들로 이루어진 멜팅 팟(melting pot)이다.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2006년 (영국의) 한 다큐멘터리가 “자신들은 100% 잉글랜드인.”이라고 굳게 믿는 8명에 대한 유전자 검사결과를 방영한 적이 있다.

그러나 기대는 빗나갔다. 유전자검사에 응했던 모두가 부유한 유전적인 유산(rich genetic heritage)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발견됐다. 유전자가 부유하다는 것은 유전적 형질이 단일한 것이 아니라 유전적 다양성이 많다는 것이다. 이는 또 많이 섞였다는 이야기다.

DNA 감식방법의 진보와 함께 과학자와 역사학자들은 이 새로운 방식을 통해 영국의 역사를 좀 더 깊게 연구 조사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그렇다면 이러한 DNA의 작은 가닥들이 과연 영국인들, 그들이 과연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는지를 말해 줄 수 있을까? 또한 이러한 새로운 접근법들이 어떻게 기존의 영국역사의 일정이라고 할 수 있는 연대표(timeline)를 바꿀 수 있을까?

과학적인 부분으로 보자

인간 게놈 프로젝트와 같이 인간 유전자 연구는 그야말로 하루가 다르게 빠르게 진행되고 있지만 혈통(ancestry)을 둘러싼 유전연구 분야는 아직도 걸음마 단계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파도가 밀리면 또 새로운 파도가 밀려오듯이 영국은 이처럼 많은 유럽의 이민족들로 바뀌고 또 바뀌면서 이제까지 계속돼 왔다. 영국만큼 부침(浮沈)을 많이 하면서 주인이 자주 바뀐 나라도 드물다.

옥스퍼드 대학의 인간유전학 교수로 영국 하원의 과학기술 고문인 분자생물학자 브라이언 사이크스(Bryan Sykes)는 처음으로 화석화된 뼈에서 DNA를 성공적으로 추출하는 데 성공한 과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1996년 그는 영국 잉글랜드 남서부 서머싯(Somerset)의 체다 협곡(Cheddar Gorge)에서 발견된 사람의 해골의 DNA를 추적한 결과 해골의 연대를 기원 전 7150년으로 추정하였다.

사이크스 박사는 연구소에서 실험한 DNA의 붕괴 비율을 기초로 “줄 잡아 1만년 전 생물의 DNA 가운데 온전한 것은 하나도 없다”는 주장의 연구논문을 과학학술지 네이처에 실어 세간의 관심을 끈 학자이기도 하다.

이것은 논란이 돼온 공룡의 재창조가 가능하다는 이론을 뒤집는 근거였다. 또한 멸종된 생물의 유전자 청사진을 재건하는 것은 외형적으로 극복할 수 없는 문제라고 주장한 것이다.

영국 잉글랜드 남서부 체다 협곡의 한 동굴에서 발견된 체다 맨의 모습. 가장 잘 보존된 유골 가운데 하나다. 체다 협곡은 관광지뿐만 아니라 선사시대 유적으로도 유명하다. 영국인의 뿌리가 있는 장소다.

체다 협곡은 석탄기시대인 2억8600만~3억6000만년 경에 만들어진 지형으로 경이로운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볼거리를 제공해 유명한 관광지이자 과학자와 고고학자들에게는 중요한 연구대상이다.

선사시대의 유적들이 많이 발견되는 지역으로 잘 보존된 해골들도 많이 발견된다. 1903년 9000년 전 인간으로 추정되는 완벽하게 보존된 인간 해골 ‘체다 맨(Cheddar Man)’이 발견된 곳이다.

이 곳에는 석탄기와 빙하기를 거치면서 빙하시대의 녹은 물이 백 만년 넘는 속에서 만들어낸 동굴들도 많다. 과학자들은 이 지역이 살기에 적합한 동굴들이 많기 때문에 오래된 인간 해골들이 발견되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DNA가닥을 통해 추적해 혈통을 추적할 수 있어

지난 15년 간 과학자들은 DNA를 통해 혈통을 추적하는 두 가지 핵심방법들을 채택하였다. Y염색체는 남자의 혈통을 추적할 수 있는 반면 미토콘드리아 DNA는 여자의 혈통을 추적하는데 사용될 수 있다.

아버지에서 아들로 전해질 때 Y염색체는 보통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많은 시간이 지나면 염색체에도 조그마한 생물학적 변이(돌연변이, 개체변이, 유전변이)들이 일어난다.

이러한 변이를 조사하게 되면 서로 다른 종족의 DNA가닥들을 추적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영국이의 유전자에는 어떠한 종족들의 혈통이 같이 하고 있는 지를 알 수가 있다. (계속)

김형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