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워치] 내부 갈등 겪는 나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지난달 29일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외무장관회의에서 미국은 외교적 패배를 경험했다. 미사일방어(MD)계획에 대해 나토 회원국들이 승인을 거부한 것이다. 미국은 MD가 잠재적 적들의 '공통된 위협' 을 물리치기 위한 것이라고 설득하려 했으나 실패로 끝났다. 거부의 주된 이유는 MD가 비현실적이고 비쌀 뿐 아니라 새로운 군비경쟁을 불러올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나토 회원국들이 MD를 거부한 더 큰 이유는 미국의 패권주의에 대한 견제다. 유럽이 미국과 동등한 입장에서 세계를 리드해 나가기 위해선 우선 유럽 안보문제에서 미국의 일방적인 주도권 행사를 막아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는 냉전 종식과 사회주의권 붕괴로 인한 나토의 성격 변화, 유럽에서 발생한 분쟁에 대한 유럽의 독자적 위기관리 능력 배양과 직접 관련이 있다.

냉전시대 나토는 바르샤바조약군의 공격을 막는 것이 임무였지만 냉전 종식으로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나토의 존재 자체에 대한 재검토 결과 1999년 4월 나토 창설 50주년을 맞아 '동맹의 전략개념' 이 발표됐다.

외부 공격에 대한 집단방위라는 기존 임무 외에 '유럽.대서양지역의 위기관리' 가 새 임무로 추가됐다. 그러나 위기관리의 구체적 내용과 군사행동의 범위에 대해선 회원국들간에 상당한 이견(異見)이 존재한다.

이와 관련 주목할 것은 유럽안보.방위아이덴티티(ESDI)다. 유럽의 안보 자립을 개념화한 것으로 미국의 개입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유럽도 독자적 군사력을 갖춰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는 99년 나토군의 유고 공습 때 미국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해야 했던 데 대한 뼈아픈 반성이다. 99년 12월 유럽연합(EU) 정상들은 2003년까지 병력 6만명.전투기 4백대.전함 1백척 규모의 신속대응군(RRF)을 창설하기로 결정했다.

'유럽군' RRF는 지역분쟁 개입, 위기관리, 평화유지활동, 인도적 구호활동에 참여한다. 또 유엔에서 요청하면 세계 어디든 갈 수 있다. 미국은 RRF에 대해 불안하다. 나토를 통한 미국의 영향력 행사가 위축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나토 내부에서 RRF에 참여한 나라와 그렇지 못한 나라 사이의 갈등도 예상된다. 터키는 RRF에 대해 기지 사용 등 협조를 거부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최악의 경우 나토가 분열하는 상황도 예상할 수 있다.

미국 백악관 안보보좌관을 지낸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는 '거대한 체스판' 에서 나토는 유럽 안보를 보장할 뿐 아니라 유럽 통합을 위한 안정적 틀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필수적 존재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나토가 지금처럼 하나의 초강대국과 18개 의존적 국가들의 불균형 관계여서는 안 되며 미국과 유럽이 1+1 관계로 바뀌어야 한다고 브레진스키는 충고한다.

그런 의미에서 MD를 둘러싼 나토 내부의 갈등은 나토가 새롭게 탈바꿈하는 조짐이며, 미국과 유럽이 대등한 관계로 나아가는 시작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정우량 편집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