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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문경찰서 강순덕 경위 '장군 잡는 여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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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 의병제대 의혹 사건을 수사한 남대문경찰서강순덕 경위. [굿데이 제공]

지난해 군 장성의 뇌물수수 사건을 파헤쳐 반향을 불러일으킨 여성 경찰관이 이번에는 현역 장성이 연루된 의병제대 비리를 밝혀냈다. 주인공은 서울 남대문경찰서 수사2계 강순덕(38)경위.

강 경위는 경찰청 특수수사과에 근무하던 지난해 6월 인천국제공항의 군 발주공사를 둘러싸고 전.현직 장성 6명이 뇌물을 받은 사실을 밝혀내고 이들을 모두 구속해 '장군잡는 처녀 경찰관'이란 별명을 얻었다.

당시 강 경위는 300억원대 공항 경비시설의 군 발주공사 첩보를 입수할 때만 해도 흔한 건설업계 하도급 비리 정도로 생각했다. 그러나 H건설 김모 상무보를 긴급 체포하는 순간 김 상무보가 부하직원에게 몰래 넘겨주려던 수첩을 '노획'하면서 수사가 급진전했다. 수첩에는 장성들의 이름과 이들에게 건네진 돈의 액수가 적혀 있었다.

육군 의무감 소병조 준장이 구속된 이번 의병제대 비리 사건도 강 경위가 실마리를 잡았다. 그는 병역 브로커인 최모씨 주변 인물에게서 "최씨가 군 고위 장성과의 친분을 바탕으로 군 면제를 주선한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이를 근거로 수사에 착수한 가운데 "의병전역한 뒤 '군 생활을 편하게 했다'며 자랑하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박차를 가해 '대어'를 낚는 데 성공했다.

강 경위는 경찰관으로서 눈부신 활약을 보이고 있으나 어려움도 적지 않았다.

전남 나주의 가난한 농가에서 8남2녀 중 여섯째로 태어난 그는 1985년 동국대 영문학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집안 사정으로 1년 만에 학업을 중단하고 86년 경찰시험에 응시했다.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앞두고 여경 125명을 뽑는 시험의 경쟁률은 100대 1. 그러나 그는 8등으로 당당히 합격했다.

경찰에 입문한 뒤 주로 외사과에서 근무한 그는 99년 미국에서 제공된 구호품을 빼돌려 병원을 세우려 한 업체를 적발한 공로로 경사에서 경위로 특진하는 등 능력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경찰청 특수수사과에서 남대문경찰서로 전보됐다. 경찰청 구내 커피숍에서 동료 여경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시중의 루머를 입에 담았다는 것이 이유였다.

아직 미혼인 강 경위는 2001년 대학에 복학해 주경야독하고 있다. 3일 남대문경찰서에서 병역비리 수사 브리핑이 진행되는 동안 강 경위는 상사의 브리핑 장면을 뒤에서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며 별로 내세울 것이 없다"며 말을 아꼈다.

이수기.박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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