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리뷰] '착한 미개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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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한국(인)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외국인과 만나면 으레 한번쯤 던지게 되는 이 질문은 '정체성' 문제에 대한 우리의 자신없음, 혹은 흔들림을 드러낸다. 어쨌든 타자(他者)의 눈에 비친 한국의 모습을 안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흥미로운 일이면서 정체성 규정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일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서양인이 본 한국인 800년' 이라는 부제가 붙은 신간 『착한 미개인 동양의 현자』는 의미있는 연구서다.

◇ 타자(他者)가 본 한국 8백년〓비교문학자인 저자 프레데릭 불레스텍스(42.한국외국어대 불어과) 교수는 프랑스로 대표되는 유럽사회에 한국의 이미지가 어떻게 형성.변화돼 왔는지를 13세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기행문.편지글.문학작품.사전.신문기사 등 다양한 텍스트 분석을 통해 통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한국을 말하는 프랑스에 관한 에세이며, 좀더 구체적으로는 한국이라는 타자를 통해 스스로를 발견해가는 프랑스의 모습" 이다. 동시에 추천사를 쓴 미 사이먼스대 박이문 명예교수의 말을 빌리면 "한국학, 특히 '한국성' 을 규정하는 데 내용적으로나 방법론적으로 하나의 학문적 이정표" 다.

그만큼 충실한 책이라는 이들의 자평에 공감이 된다. 무엇보다 1천여쪽에 이르는 소르본대 박사 학위 논문이 원본인 만큼 전문적인 내용이 돋보인다. 이를 한국 독자를 위해 단행본으로 정리하면서 '논문 냄새' 가 거의 풍기지 않도록 한 것도 장점이다. 또 고(古)지도와 그림.사진 등 풍부한 시각 자료는 그 자체로도 흥미진진한 눈요깃거리다.

◇ 왜 프랑스의 시선인가〓저자는 우선 한국인에게 프랑스라는 타자가 갖는 의미부터 짚고 있다. 병인양요 등을 통해 프랑스가 서구 어느 나라보다 한국의 옛자료들을 많이 보유하고 있으며, 서양에서는 한국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1254년)이 남아 있는 나라라는 사실은 서양의 한국학에서 프랑스가 갖는 비중을 말해준다. 또 프랑스의 자료들은 식민주의식으로 접근한 것은 물론, 전혀 다른 시각에서 본 인본주의자들의 다양한 글들을 포함하고 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저자에 따르면 한국의 이미지는 시대에 따라 크게 세 단계로 바뀌어 왔다. 먼저 13~17세기에 몽골제국을 방문했던 유럽인들이 먼발치로나마 접했던 한반도(당시엔 섬으로 알려져 있었다)는 오랜 역사의 문명국이면서 동시에 '야성적 인간' 들이 사는 '머나먼' 나라였다. 이같은 이미지는 네덜란드 선원이었던 하멜의 『제주도 난파기』와 『조선왕국기』(1668년) 등이 소개된 후 '접근할 수 없는' 나라로 바뀐다.

특히 18세기와 19세기 초 한국 사회를 직접 체험한 이들은 한국인에 대해 '착한 야만인' 과 '동양의 현자' 라는 이미지를 간직한 가운데 '조용한 아침의 나라' 와 '은둔의 왕국' 이라는 긍정적인 시각과 부정적인 시각을 함께 제공한다. 한반도가 외교적으로 개방된 1880년대 이후에도 한국은 일본이나 중국 등에 비해 '심연의 나라' 로 인식된다.

◇ 현대 한국성의 본질은 무엇일까〓결론적으로 저자는 "프랑스에서의 한국은 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 먼 곳을 표상하는 대상으로서 프랑스와 극동 지역의 종교적.상업적.학문적 이해관계에 따라, 그리고 인접국가나 기타 강대국들과의 지정학적 균형관계에 따라 변화해 왔다" 고 말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한국의 이미지는 "체험보다는 상상에 의존" 한 것이었으며 "오랫동안 정복자이고 식민통치자였던 프랑스의 우월성" 이라는 이념을 반영한다고 지적하면서, 저자는 한국의 정체성, 즉 '한국성' 에 대한 자신의 원대한 연구계획을 밝힌다.

이 책은 한반도에 대한 표상을 드러내는 1단계 작업의 결과물일 뿐이며, 2단계로 한국성 개념을 이뤄온 요소들을 보다 본격적으로 탐험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중의 타자' (중국.일본과 서구의 입장에서 볼 때 타자이면서 한국 내부에서도 남과 북이 서로를 타자의 시선으로 보고 있다)인 현대 한국의 모습을 고찰하겠다고 저자는 약속한다. 그 결과가 자못 기대된다.

김정수 기자

*** 서양 문헌속 한국 이미지

▶체구가 작고 스페인 사람처럼 까무잡잡한 피부의 사람들이 사제들처럼 갓을 쓰고 다니는데 검은 니스를 칠해 뻣뻣해진 외올베로 만든 갓들은 어찌나 윤을 냈는지 햇빛에 반사되면 마치 거울처럼 혹은 잘 닦은 군모처럼 반짝인다. (드 루브룩의 『몽골제국 여행기』, 1254년)

▶귀족들과 평민들은 자녀들의 교육에 심혈을 기울인다. 이 나라는 읽고 쓰기에서 즐거움을 많이 얻는 듯하다. 이들은 손으로 쓰거나 인쇄된 고서들을 많이 가지고 있는데 너무도 소중하게 보관하기 때문에 왕의 동생이라도 와야 내줄 것 같다. (하멜, 1668년)

▶한국인들은 대체로 온순한 천성이다. 이들은 학문에 대해 관심이 깊고 춤과 무용도 즐긴다. 그러나 이 나라에는 방탕한 여자들이 많고 젊은 남녀들은 지나치게 자유분방하다. (프레보의 『여행의 역사』, 1748년)

▶바닷가의 한국으로 가자/대양이 그 슬픈 세계를 두르고 있는 곳/대지에는 불모지와 동굴이 있네(볼테르의 희곡 『중국의 고아』, 1754년)

▶한국인의 가장 큰 덕목은 인류애를 존중하는 선천적인 마음과 그것을 매일 실행하는 자세다. (그러나)수많은 사람이 다른 이들의 호의에 기대어 이곳 저곳 어슬렁거리며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빈둥거리며 산다. (달레의 『한국 교회사』, 1874년)

▶은둔의 왕국! 오, 아침의 나라여!(아폴리네르의 우화 '달의 왕' , 19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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