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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매달아도 군대 얘기는 재미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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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군대를 프리즘 삼아 우리 사회의 권력관계를 삐딱하게 풍자한 소설가 김종광씨. [중앙포토]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할 입심의 소설가 김종광(39)씨가 장편소설 『군대 이야기』(자음과모음)를 펴냈다. 소설의 제목을 접하는 순간 거의 자동적으로 다음과 같은 풍경이 즉각 떠오른다. 청춘을 ‘반납’한 채 몸을 싣는 입영열차, 웃지 못할 환송·이별 에피소드와 연애담, 전설적인 고문관(군대 부적응자) 등. 군대와 관련해 우리에게 익숙한 농담도 부지기수다. ‘거꾸로 매달아도 국방부 시계는 돌아간다’ ‘여성들이 가장 싫어하는 이야기는 군대에서 축구한 얘기이다’ 등등.

그만큼 군대 얘기라면 딱히 새로울 게 없을 듯하다. 실제로 소설은 앞서 언급한 사건을 두루 담고 있다. 그런데도 김씨의 입심을 만나고 보니 군대 얘기가 새롭게 다가온다. 오히려 감칠맛 나게 재미 있다. ‘김종광표 웃음’이 제대로 빛을 발하는 장면은 1996년 북한 잠수함 강릉 좌초 때의 에피소드다. 상관에게는 적당히 ‘개기고’ 후임에게는 가혹한 리더의 자질을 선보여 분대장이 된 소설의 주인공 소판범. 실제 상황이 닥쳐 실탄을 지급받고 후임과 함께 외딴 초소에 배치되자 섬뜩함을 느낀다. 평소 자신의 악행에 억하심정을 품은 후임이 하극상 하자고 덤비지나 않을지 걱정된 것이다. 에피소드의 백미는 주먹밥 배달사고. 후임의 실수로 주먹밥 대신 건빵 저녁을 때우게 된 소판범이 극도의 울분을 어머니와의 가상 대화로 가라앉히는 과정이 반복·점층법 등을 통해 코믹하게 그려진다.

소설은 통념을 부정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소개팅에서 만난 두 살 아래 여교사 ‘상큼’이 예상을 깨고 군대 얘기를 해달라고 한 것이다. “축구 얘기는 별로지만 군대 얘기는 재미있다”며 채근한다. 이에 설득 당한 소판범, 군 체험을 주섬주섬 털어 놓는다. 주특기 배정 과정, 각종 훈련 등 정보성 일화부터 대학 친구들이 돈도 없이 충동적으로 면회 오는 바람에 외박 나가 굶었던 일 등을 천연덕스럽게 소개한다. 이따금씩 소판범의 회상에 개입해 질문을 던지는 상큼은 소설의 윤활유 같은 존재다.

‘에프엠’(원칙을 고수한다는 뜻의 군대 속어) 군수 장교로 인해 벌어지는 일련의 소동은 웃을 일만도 아니다. 원칙 고수와 속칭 ‘유도리’라고 하는 보다 유연한 입장은 어느 정도 선에서 절충되어야 하는 것일까. 군대가 아닌 사회에서라면?

소설은 시종일관 군대 얘기를 하고 있지만 실은 군대를 포함한 우리 사회 전체에 대한 풍자로도 읽힌다. 군대와 관련된 익숙한 명제 중 하나는 군대는 사회의 축소판이라는 것이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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