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전망대] 최고 권력의 가족 관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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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얼마 전 홍콩의 한 전람회에서 "독실한 신앙인으로 거듭난 사람" 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 사업가를 만난 적이 있다. 이 사업가는 그 과정을 설명하다 "마귀는 가장 가까운 데 있더라" 고 말한 뒤 껄껄 웃었다. 진짜 신앙인이 되려고 하니까 아내가 막고 나서더라는 얘기다.

지금 대만 천수이볜(陳水扁)총통이 꼭 이 모양이다. 陳총통은 취임 이후 요즘 가장 물이 오른 시기다. 중.미 간의 갈등 '덕분' 에 뉴욕에서 유례없는 환대를 받고 기분이 한껏 고양된 상태다. 중남미 순방 결과도 그만하면 흡족한 편이다. 그런데 가장 가까운 주변인들에게 발목을 잡히고 말았다.

사례 1:대만 시사주간지 시보주간(時報週刊)은 28일 "국방부가 陳총통의 외아들 즈중(致中)군을 위해 특혜를 베풀었다" 고 폭로했다. 내용은 이렇다.

대만 국방부는 최근 대학생들을 위한 장교선발시험인 '예비군관고시' 의 선발정원을 돌연 두명 늘린 12명으로 발표했다. 그리고 늘어난 정원 두명은 고스란히 예비군관 내 군법무관 몫으로 할당됐다.

이로써 군법무관 선발정원은 당초 네명에서 여섯명으로 늘었다. 문제는 대만대 법학과에 재학 중인 즈중군이 군법무관 분야에 응시해 6등을 기록했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다. 예비군관을 포함한 모든 군인은 매년 7월 15일 입대해야 한다.

그런데 국방부는 '올해만' 이라는 단서를 달아 입대 시기를 '7월 15일' 과 '10월 15일' 양일로 지정했다. 이 역시 오는 10월에 있을 법관 고시에 즈중군이 응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배려라는 주장이다.

사례 2:뼈 전문의인 자오젠밍(趙健銘)은 곧 陳총통의 외동딸 싱위의 남편이 된다. 그런데 결혼 사실이 알려진 뒤 趙는 병역면제처분을 받았다. 통풍(痛風)이 사유였다. 그러나 대만의 한 전문의는 "통풍은 관리 가능한 질병" 이라고 말하고 "통풍 때문에 면제조치를 받은 일은 드물다" 고 언론에 밝혔다.

陳총통이 28일 발표한 '신5불(新五不)' 정책에는 "결코 '장기판 말' 이 되지는 않겠다" 는 항목이 포함돼 있다. 자주 국가의 의지를 밝힌 부분이다. 그러나 주변인들에게 휘둘리는 말이 되고 만다면, 강대국에 휘둘리지 않았대서 나아질 것은 하나도 없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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