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정국 문답풀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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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인도네시아 독립 이후 처음으로 민주적 절차로 선출된 압두라만 와히드 대통령이 다시 민주적 절차에 따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날 위기에 처했다.

인도네시아 의회(DPR)내 6개 정당이 29일 와히드 대통령의 특별조치 명령에도 불구하고 그를 탄핵하기 위한 국민협의회(MPR) 특별총회를 소집키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물론 탄핵 절차에 들어간 뒤에도 와히드와 민주투쟁당 당수인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부통령간의 타협 가능성은 남아 있다. 그러나 양측 모두 내세울 만한 카드가 마땅치 않은 데다 와히드 지지세력의 시위에 의한 우발사태 발생 가능성도 있어 인도네시아 정국은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전망이다.

현지 일간지 자카르타 포스트는 이날 메가와티 부통령이 와히드의 권력분점 제안을 최종적으로 거부하고 특별총회를 소집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인도네시아가 사상 첫 대통령 탄핵절차에 돌입할 것이 확실해졌다고 보도했다.

◇ 와히드의 선택=와히드는 28일 치안유지를 위한 특별조치 명령을 발표함으로써 쓸 수 있는 카드는 모두 쓴 셈이다. 당초 와히드가 의회 해산을 목적으로 취하려 했던 비상사태 선포라는 마지막 선택이 남아 있기는 하다.

하지만 개발도상국 19개국의 모임인 G-15 외무장관 회담이 자카르타에서 열리고 있는 와중에 대통령이 탄핵을 피하기 위해 무리수를 두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수실로 밤방 유드요노 정치.사회.안보 조정장관을 포함해 내각 일부와 군 수뇌부가 비상사태 선포를 명백하게 거부하고 있다는 점도 와히드가 섣불리 행동을 취할 수 없는 배경이다.

와히드의 특별조치에도 불구하고 수실로 조정장관은 "우리는 대통령과 부통령 두 지도자를 모시고 있고 둘 모두에게 충성하겠다" 며 사실상 와히드 명령을 거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모하메드 마후드 국방장관 역시 "이 명령만으로 아무도 체포하지 않겠다" 며 지지거부를 표명했다.

비상사태 선포를 하지 않으면 와히드는 특별총회 소집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문제는 그의 최대 지지세력인 이슬람단체 나들라툴 울라마(NU)의 동향이다. 벌써 와히드의 고향 동자바에서 3천여명이 자카르타로 진입해 시위를 벌이는 등 폭력사태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와히드는 NU 시위로 야기된 혼란을 이유로 특별총회 소집 전에 반대파와 정치적 타협을 시도하거나 아니면 최악의 경우 계엄령을 내릴 수 있다.

◇ 메가와티의 선택=메가와티가 이끄는 의회 내 제1당 민주투쟁당은 2당 골카르당 등 6개 정당과 함께 29일 특별총회를 소집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와히드의 25일 권력분점 제안을 거부하고 헌법 절차에 따라 탄핵을 추진하기로 한 것은 권력을 잡을 수 있는 쉽고 빠른 길 대신 멀지만 뒤탈이 없는 민주적 절차로 정통성을 확보하겠다는 의지다. 하지만 특별총회 소집 전에 와히드와 정치적 타협을 이룰 여지도 여전히 남아 있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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