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깃털' 로 끝난 의료대란 문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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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감사원이 국민건강보험 재정 운용 실태를 특감한 결과를 발표하면서 보건복지부 차관과 실.국.과장급 등 7명에 대해서만 문책을 요구함으로써 형평성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의약분업 추진 및 시행 과정에 참여한 당.정 고위 인사들은 모두 빠져나가고 실무자들에게만 책임을 물었기 때문이다.

감사원은 차흥봉(車興奉)전 복지부 장관의 경우 보험 재정 적자의 심각성을 보고하지 않고 국민 불편 최소화 대책을 소홀히 하는 등 문책 사유가 있으나 장관직에서 퇴임한 점을 고려해 책임을 묻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복지부 실무진은 이미 1999년 9월 의약분업을 실시할 경우 의보 재정에 적자가 날 것이라고 보고했으나 車전장관이 이를 묵살했고 추가 소요 재정도 연간 1조5천억원에 불과한 것으로 발표했다고 말하고 있다.

의보 재정 적자가 예상됐는데도 이를 숨긴 채 '의약분업을 실시하더라도 돈이 더 들어가지 않는다' 고 홍보했다면 국민을 기망(欺罔)한 것 아닌가.

물론 정책 판단 문제를 단죄할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이론이 있다. 하지만 이 정부 들어 검찰은 정책결정 책임을 물어 강경식(姜慶植)전 부총리와 이석채(李錫采)전 정보통신부 장관을 기소한 전례가 있다.

姜씨가 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기 때문에 車전장관을 고발하지 않았다고 설명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전 정권의 실정에 대한 책임 추궁 방식과는 차이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의약분업은 '국민의 정부' 의 개혁 과제 중 하나였다. 수차례 당정회의가 열렸고 국무총리가 회의를 주재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총리실 등에 대해서는 감사의 손길조차 미치지 않았다. 오죽하면 복지부 공무원들이 "몸통은 건드리지도 못하고 복지부 실무진을 정책 실패의 희생양으로 삼으려 한다" 고 볼멘소리를 하겠는가.

당.정 고위 인사들은 비켜간 채 복지부 실무진에게만 책임을 묻는다면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 정책 실패에 대한 책임 추궁은 국민뿐 아니라 당사자들도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 문책이 '깃털' 에 그친다면 공무원 사회의 무소신과 무사안일만 부추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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