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완전 포괄주의' 과세 안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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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가 내놓은 중장기 세제 운용 방향은 원칙의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몇가지 중대한 문제점과 해결 과제들을 안고 있다. 과세 기반을 확대하고 각종 비과세.감면을 줄이는 한편 부동산 세제를 보유세 중심으로 개편하겠다는 원칙에는 이견(異見)이 없다.

그러나 이번 세제 개편은 외환 위기 이후 취약해진 재정 기반의 건전화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징세의 효율성이 너무 강조됐으며 상대적으로 서민.중산층에 대한 배려가 미흡하다는 평가를 면키 어렵다.

우선 상속.증여에 대해 철저히 세금을 물리겠다는 방향은 옳지만 '완전포괄주의' 발상은 문제가 있다. 헌법 제59조에는 '조세의 세목과 세율은 법률로 정한다' 고 돼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법률에 명시되지도 않은 '모든 소득' 에 대해 세금을 물리겠다는 것은 납세자의 권익을 도외시한 징세 편의주의적 발상이다.

재산세 등 보유세 부담을 늘리는 대신 양도세를 줄이겠다는 것도 자칫 집 한 채만 갖고 있는 중산층.서민의 피해가 커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보완이 필요하다. 교통비 등 월급 생활자의 복지성 소득까지 '포괄적으로' 세금을 물리기에 앞서 숨겨진 고소득 자영업자와 전문직 종사자의 소득에 대해 철저히 과세하려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

이런 노력 없이 가뜩이나 유리알처럼 투명한 월급 생활자에 대해서만 철저히 과세하겠다는 것은 형평성에도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자칫 심각한 조세저항을 불러일으킬 소지도 있다.

이런 원칙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세제 개편 과정에서 정치적 고려가 배제돼야 한다는 점이다. '목적세 정비, 세원 확대 및 세율 인하' 등은 과거 개편 때도 수없이 등장했지만 현 세제는 수많은 예외.감면으로 누더기 꼴을 면치 못하고 있다. 내년 선거를 앞둔 현 시점에서 정부의 이런 원칙이 얼마나 지켜질지 두고볼 일이다.

아울러 정부는 재정의 건전화를 위해서는 세수(稅收)증대 못지 않게 세금의 효율적 사용이 중요하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지금같이 부실 금융기관.기업 뒤치다꺼리에 엄청난 세금이 들어가서는 아무리 세수가 늘어도 재정은 나아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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