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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대기자의 투데이] "공은 넘어가지 않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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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플로리다주 재검표 소동으로 미국 대통령선거 결과가 한달 이상 오리무중이던 지난해 11월 브렌다이스대학의 로버트 라이시 교수는 조지 부시와 앨 고어의 어느 쪽이 당선자로 결말이 나더라도 미국의 새로운 권력의 중심은 민주당의 보수세력과 공화당의 진보세력의 연합으로 옮겨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클린턴 행정부에서 노동장관을 지낸 라이시 교수는 새로운 행정부는 "클린턴 없는 3기 클린턴 행정부" 의 성격일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그는 특히 전국 득표에서 고어에게 진 부시가 당선자로 확정되면 약체 대통령 부시는 이념적으로 보수에서 중도로 이동해야 하고 강력한 정책을 주도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예상은 빗나갔다. 부시 대통령은 로널드 레이건의 보수주의를 닮은 우파노선을 선명히 하고, 스타일에서도 스트롱 아메리카를 이끄는 강력한 지도자의 이미지를 굳혀나갔다. 부시는 글로벌 미사일방어(MD)망을 거침없이 밀어붙이고, 진보세력이 반대하고 부유층이 환영하는 감세법안을 통과시켰다.

부시는 투표에서 지고 개표에서 이긴 대통령 같지 않다. 유권자들은 그를 '온건화' 시키는 데 실패했다. 그러나 부시는 엉뚱한 데서 복병을 만나 어쩌면 감세법 제정을 마지막으로 신자유주의적인 노선을 대폭 수정하게 될지도 모른다. 공화당 소속 상원의원 제임스 제퍼즈가 탈당해 50대 50이던 상원 의석분포가 50대 49대 무소속 1로 바뀌어 민주당이 다수당이 된 것이다.

민주당은 상원의 상임위원장 자리를 독점하고, 민주당 원내총무 톰 대슐이 상원의 법안 상정과 심의를 포함한 모든 입법절차를 장악하게 된다. 미국의 정당정치에서 상원의 권한은 막강하다. 존스 홉킨스대학 국제관계대학원의 객원교수인 언론인 돈 오버도퍼는 상원의 권한에 대해 이런 설명을 e-메일로 보내왔다.

"상원은 하원이 갖지 않은 권한을 세가지 가지고 있다. 첫째는 대법원판사, 대사, 각료, 군 고위사령관을 포함한 주요 인사에 대한 임명동의권(거부권)이고, 둘째는 국제조약의 비준권이고, 셋째는 하원이 비리를 저지른 대통령을 탄핵하면 상원이 맡는 재판관의 역할이다. "

4백35명의 하원의원은 각주의 특정 선거구를 대표하지만 한 주에서 2명이 선출되는 1백명의 상원의원들은 선거구가 아니라 주 전체를 대표한다. 임기가 하원의 2년에 비해 상원은 6년인 것도 상원의 압도적인 비중을 반영한다.

의회의 활동은 상임위원회 중심이어서 위원장 자리를 차지하는 다수당의 협력 없이는 대통령 직무 수행은 어렵다. 미국의 유권자가 해내지 못한 부시 '길들이기' 를 상원의원 한 사람의 탈당이 해낼 것으로 기대된다.

민주당 원내총무 대슐의 취임 제1성은 부시 행정부의 험난한 앞날을 예고한다. 그는 1조3천5백억달러의 감세 규모를 줄이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또 알래스카의 야생동물 보호구역에서의 석유개발을 허용하려는 부시의 계획을 좌절시킬 것이며, 글로벌 미사일망에도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우리의 관심은 대북정책에서 전반적으로 클린턴의 포용정책과 한반도 긴장완화를 지지하는 민주당의 상원 장악이 행정부의 북한 압박을 얼마나 견제할 것인가다. 부시 행정부는 공은 북한으로 넘어갔다면서 북.미관계가 개선되고 안되고는 북한이 얼마나 국제사회가 기대하는 대로 대량살상무기를 포기하느냐에 달렸다고 주장한다. 대화는 곧 재개하되 각 단계의 합의마다 검증을 하겠다는 입장이다.

검증을 강조하는 것은 북한더러 미국이 정하는 룰대로 대화를 하거나 그게 싫으면 그만두고 계속 고립된 불량국가의 불이익을 감수하라는 의미다. 고래와 새우의 거래에서 약자인 새우의 양보를 받아내려면 강자인 고래가 어느 정도의 당근은 제공해야 한다.

그러나 미국은 당근 제공을 거부하고 1대 1의 흥정을 주장한다. 그 서슬에 우리가 열광한 남북 정상회담이 '썰렁한' 1주년을 맞게 됐다. 공은 북한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그래도 달리 기댈 데가 없다. 민주당의 상원 장악을 뜻밖의 원군(援軍)으로 생각하고 기대를 걸어본다.

김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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