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세계바둑 판도 안개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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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중국 시안(西安)에서 춘란배 세계대회 준결승전이 끝난 다음날(26일) 중국의 인터넷엔 이런 글귀가 올라 있었다.

"시안의 친구가 말하기를 어젠 하늘마저 어두웠다. "

준결승전에서 중국의 마지막 선수인 왕레이(王磊)8단이 한국의 유창혁9단에게 패배한 것을 두고 한탄한 글이었다.

중국은 이번 대회에서 신예기사 쿵제(孔杰)5단이 이창호9단을 꺾는 등 8강전에 5명이나 진출했으나 결국 결승전엔 한국의 유창혁9단과 일본의 왕리청(王立誠)9단이 올라가 3번기를 치르게 됐다 (王9단은 준결승에서 조훈현9단을 이겼다).

중국은 3월까지 기세를 떨치다가 4월의 후지쓰배에서 참패했고 곧이어 5월의 춘란배에서도 몰락해버렸다. '이창호를 예외로 둔다면 공한증은 이제 없다' 고 말하던 중국으로선 참으로 허망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한국도 그전처럼 막강하지는 않고 일본도 그전처럼 무력한 존재가 아니다. 절대강자인 이창호9단이 한발 물러서면서 세계바둑의 판도가 안개속처럼 뿌옇게 변한 것이다.

한국의 경우 돌풍의 주인공이던 이세돌3단이 LG배 세계기왕전에서 이창호9단에게 대역전패하면서 전체적으로 소강상태를 보이고 있다. 올해 국제무대에서 이창호9단의 공백을 훌륭히 메워온 조훈현9단도 이번 춘란배에선 왕리청9단에게 져 아쉬움을 주고 있다.

왕리청9단은 최근 일본에서 고바야시 고이치(小林光一)9단을 3대2로 격파하고 랭킹 4위의 10단 타이틀을 따냈다. 랭킹1위의 기성에다 10단까지 거머쥔 그는 지난해 춘란배 우승에 이어 오는 6월 22일 베이징(北京)에서 대회 2연패를 노리게 됐다. 그렇다면 그 왕리청이 한.중.일을 통틀어 가장 잘 나가는 기사일까.

아마도 그럴지 모른다. 하지만 王9단은 지난번 후지쓰배 16강전에서 한국의 최명훈7단에게 져 탈락한 일이 있다. 또 王9단이 실패한 본인방(本因坊)전에선 왕밍완(王銘琬)9단과 신예 장쉬(張)7단이 타이틀을 다투고 있다.

부진하던 일본바둑이 대만계 기사들의 분전으로 살아나고 있는 것도 놀랍다. 진행 중인 후지쓰배는 오는 2일 중국 선전(深□)에서 8강전을 치르는데 여기엔 일본이 4명이나 올라가 있다. 한국은 조훈현9단과 최명훈7단 2명, 중국과 대만은 각 1명.

대진표를 보자. 조훈현9단은 고바야시 고이치9단과, 최명훈7단은 조치훈9단과 대결한다. 중국의 위빈(兪斌)9단은 린하이펑(林海峰)9단, 그리고 16강전에서 이창호를 꺾은 '대만의 희망' 저우준쉰(周俊勳)9단은 일본의 신예 고노 린(河野臨)5단과 맞선다. 누가 우승할까. 조훈현9단일까.

세계 바둑계는 안개속이다. 지난 24일 중국의 천원 창하오(常昊)9단은 일본 천원 유시훈7단을 2대0으로 꺾었다. 창하오가 조용하지만 아주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이창호9단은 수입으로만 따진다면 應씨배와 LG배 두개대회에서만 7억여원을 벌어 단연 선두다. 춘란배는 유창혁9단이 우승을 노리고 있고 후지쓰배는 대만의 저우준쉰조차 우승의 꿈을 토로하고 있다.

박치문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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