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화용가스 누출… 유치원생 등 50여명 질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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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28일 오후 5시쯤 서울 종로구 사간동 금호미술관 2층 전시실에서 소화용(消火用)가스가 누출돼 유아.유치원생 등 관람객 50여명이 질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로 반예준(5.서울 동작구 사당동)양이 강북삼성병원 중환자실에 입원 중이나 중태다. 부상자들은 4개 병원에 옮겨져 치료 중이며 일부는 퇴원했다.

미술관에서는 '쿨룩이와 둠박해' 라는 어린이 대상 기획전이 열리고 있었으며 어린이들은 참여광고 등을 보고 미술관을 찾았다.

◇ 무방비로 당한 사고=4층 건물 중 2층의 50평 전시실 천장에 설치된 7개의 화재방지용 스프링클러에서 소화용 이산화탄소가 한꺼번에 새어나오면서 발생했다.

이로 인해 관람실 내 산소량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어린이와 학부모 등이 질식해 쓰러졌다.

두 딸과 함께 왔던 민기정(31.여.서울 용산구 이촌동)씨는 "경보음이 울리면서 천장에서 흰 가스가 새어나와 실내에 가득 차면서 정신을 잃었다" 고 말했다.

구조를 위해 처음 현장에 들어간 청와대 외곽 경비대 소속 최수혁(22)의경은 "부근을 순찰하던 중 미술관에서 흰 연기가 나 뛰어들어가 보니 10여명이 바닥에 쓰러진 채 코에서 피를 흘리거나 입에 거품을 물고 있는 급박한 상황이었다" 고 말했다.

당시 2백여명이 관람 중이었으며 사고가 나자 한꺼번에 출구로 몰려 나오느라 수라장을 이뤘다.

◇ 긴급 구조=부근을 순찰 중이던 崔의경 등 두명이 현장에 뛰어들어가 실신한 어린이들을 업고 나왔다. 또 곧바로 출동한 119소방대원과 경찰 등 1백여명이 추가 투입됐다.

경찰.소방대원들은 유리창을 모두 깨뜨려 환기를 시키고 의식을 잃은 부상자들을 건물 밖으로 들고 나와 산소호흡기로 인공호흡을 하면서 병원으로 옮겼다.

부상자들을 치료한 강북삼성병원 소아과 박민혁(28)씨는 "어린이의 경우 이산화탄소 가스에 5분 이상 노출되면 뇌와 신장에 치명적 장애를 일으켜 위독할 수 있다" 고 말했다. 소방 관계자들은 "소화용 가스는 인체 유해성 때문에 통신.전산 설비 등의 보호를 위해 주로 사용되는 것" 이라고 지적했다.

◇ 할론가스 사용 여부 등 수사=경찰은 한 어린이가 소화가스 스위치를 누르는 것을 봤다는 관람객들의 진술에 따라 일단 어린이의 장난 때문에 발생한 사고로 보고 있다.

문제의 스위치는 전시실 입구 1.2m 높이의 벽면에 설치돼 있으며 플라스틱 덮개가 2㎜ 정도로 얇아 손으로 누를 경우 쉽게 깨지도록 돼 있다.

미술관측은 작품의 손상을 막기 위해 스프링클러에서 물 대신 이산화탄소가 나오도록 설계돼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경찰은 인체에 유해한 할론가스가 섞였을 가능성도 있을 것으로 보고 할론가스 사용 여부를 포함,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 중이다.

금호미술관은 1989년 개관돼 96년 11월에 현재의 장소로 이전한 국내의 대표적인 미술공간이다.

손민호.남궁욱.문병주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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