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독일·영국 유럽 패권다툼 치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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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프랑스.독일.영국 등 유럽연합(EU)의 주축을 이루는 세 나라가 유럽 통합을 놓고 치열한 주도권 다툼을 벌이고 있다.

EU는 2003년 이후 회원국 수가 28개국으로 현재(15개국)의 두배 가까이로 확대되는데 이 과정에서 서로에게 통합의 주도권을 넘겨주지 않으려 치열한 '기(氣)싸움' 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 독일=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는 지난달 집권 사민당의 이름으로 유럽 통합 방안을 발표했다.

지난해 요슈카 피셔 외무장관의 '유럽연방' 안을 구체화한 이 방안은 EU의 3대 기구인 집행위원회와 유럽의회.각료이사회의 권한을 강화해 통합유럽의 정부기구로 만들자는 것이다.

집행위를 실질적 정책결정권을 갖는 유럽정부로, 각료이사회와 유럽의회를 각각 상.하원으로 만들자는 이 제안은 지나치게 독일연방식 모델을 닮아 적지 않은 반발이 있다. 특히 유럽 내 소국들의 반발이 심하다.

◇ 프랑스=독일의 방안에 대해 일절 반응을 보이지 않던 리오넬 조스팽 총리는 한달여 만인 28일 현재의 구조를 유지한 채 기존 기구들의 권한을 대폭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 안을 발표했다.

조스팽은 또 회원국 국가원수 및 행정부 수반들의 포럼인 유럽이사회를 정책결정의 주요 기구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 독일의 유럽연방안과 거리를 두었다.

조스팽의 구상은 독일의 고지 선점을 견제함과 동시에 통합에 적극적인 핵심국가들이 통합을 선도한다는 자크 시라크 대통령의 '2중 속도론' 도 배척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 영국=토니 블레어 총리는 유럽 통합과 공동화폐인 유로권 가입에 원칙적으로 찬성하지만 통합을 주권포기로 인식하는 국내 여론 때문에 입장 표명을 꺼려 왔다.

하지만 지난주 "EU라는 옷을 버리면 영국이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며 두가지 구상을 제시했다. 유럽이사회를 제도적인 기구로 승격시켜 정책결정을 담당케 하고 독일이 주장하는 유럽헌법의 제정 대신 개별국가 또는 유럽 차원에서 결정할 사항들을 구분한 일종의 '권한헌장' 을 만들자는 게 그것이다.

이는 유럽 통합이 이뤄져도 영국이 주권국가로 남아 있을 것임을 국민에게 설득하기 위한 것으로 프랑스의 주장에 보다 가깝다.

파리=이훈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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