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마약 커밍아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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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일본에서 1백만장이 팔리면 대통령이 상을 줄 것 같아요. 그러면 저는 꼭 마약을 할 거예요. 잡혀가지 않아도 되니까. 대통령상하고는 살인범이 아닌 이상 맞바꿔 주거든요. 저는 목표를 그걸로 해서 잘 해보고 싶고요, 마약이 없으니까 자꾸 카지노에 가게 돼요. "

마약 투약 전과가 있는 가수 전인권씨가 자신의 삶의 목표는 위와 같이 마약하는 것이라고 떳떳이 밝혔다.

'사회비평' 여름호 특별대담에서 전씨는 자신이 일본에 진출, 음반을 많이 팔아 대통령상을 받으면 그 '면책특권' 으로 마약을 투약하겠다고 한 것이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고, 좋은 노래를 들려주고 싶어 마약을 한다면 그것은 죄가 아니라고도 주장했다.

이 잡지의 편집주간 김진석씨는 공식적 혹은 지적으로 논의가 되지도 않은 마약이 그냥 당연하게 범죄시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전씨의 말은 소신 있고 귀중한 자료로 남을 발언이라고 치켜세웠다.

그러면서 시민과 국가에 "맹목적으로 죄인을 만드는 일을 그만두라" 며 마약을 공식적 논의의 장으로 끌어들일 것을 요구했다. 한 인기가수와, 사회의 흐름을 지적으로 분석, 전망해 내려는 한 잡지가 함께 마약에 대해 '커밍 아웃' 한 것이다.

커밍 아웃(coming out)이란 스스로가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밝히는 것. 지난해 연예인 홍석천씨가 커밍 아웃을 하며 동성애가 금기의 벽을 허물고 논란의 장으로 들어왔다. 개인적인 성적 취향을 인정하지 않고 불이익을 주는 것은 인권 침해라는 일부 인권.사회단체의 옹호까지 얻어내고 있다. 그렇다면 이번 '마약 커밍 아웃' 은?

치료상 필요한 약이기도 하지만 남용하면 정신적.육체적으로 폐인이 되기 때문에 국내외적으로 강력한 단속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 마약이다. 역사 이전의 시대부터 사용된 마약은 그 환각작용으로 인해 영감(靈感)을 얻거나 우주만물과의 막힘 없는 교감의 시를 쓰기 위해 콜리지.포.보들레르.랭보 등 유럽의 낭만.상징파 시인 등 예술가들을 끊임없이 유혹해왔다.

권씨도 좀더 좋은 노래를 청중에게 들려주기 위한 것이니 허용해 달라고 감히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억눌렸거나 스스로 감춘 부분들이 각기 제 주장을 하며 커밍 아웃되고 있으니 무엇이 옳고 그른지 분간하기 어렵다. 이런 대전환기일수록 건전한 이성과 사회적 도덕성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이경철 문화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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