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를 다지자 시리즈를 끝내며… 전문가 좌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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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기초를 다지자' 시리즈 1백회를 끝내면서 각계 전문가 세 명을 초청해 우리 사회의 기초부실 원인을 진단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홍사종(洪思琮)숙명여대 교수.지만원(池萬元)사회발전시스템연구소장.유상호(柳相浩)메리츠증권 상무 등이 참석 열띤 토론을 벌였다. 사회는 김영섭(金泳燮)중앙일보 여론매체부장이 맡았다.

▶홍사종=기초부실의 주된 원인으로 꼽힌 '잘못된 국민의식' 과 '잘못된 학교.가정교육' 은 동전의 양면이다. 어렸을 때의 경험과 학습이 평생을 좌우하고, 이런 개인별 성향이 모여 국민의식이 된다. 우리 기성세대는 근대화의 물결 속에서 고유의 미풍양속을 저버린 채 물질만능주의에 휩쓸려 왔다. 하지만 학교와 가정에서 이를 바로잡지 못해 국민의식이 잘못 형성됐다.

▶유상호=사회 시스템의 기초가 부실한 주된 원인은 매뉴얼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설령 있어도 지키지 않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다. 페널티(벌칙)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공사감리 규정만 해도 그렇다. 국내기업이 외국에선 규정을 철저히 지키면서도 국내에선 그런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

▶지만원=컴퓨터의 질은 소프트웨어가 좌우한다. 사회구조도 마찬가지다. 우리 사회에는 소프트웨어적인 인프라가 거의 없다. 은행 객장에 설치된 순번대기 시스템이 유일하달까. 은행 객장의 예는 제대로 된 시스템만 있으면 어느 누구의 간섭없이 저절로 질서가 유지된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보이지 않는 손' 을 작동해야 한다. 요행을 바라는 현실에서 시스템 구축은 요원하다. 사회의 과학화가 시급하다.

▶홍=시스템만 갖춘다고 기초가 다져지는 건 아니다. 엉망인 공연관람 질서를 보면 알 수 있다. 공연장에 시스템이 없는 것은 아니다. 관람객이 시스템을 엉망으로 만드는 게 더 큰 문제다. 따라서 의식개혁을 병행해야 한다. 강제적 시스템이 분명 효과는 있지만 각자의 의식개혁이 뒤따르지 않으면 그 때뿐이다.

▶유=의식개혁과 교육의 중요성에는 공감하나 이를 통해 기초를 다지려면 20~30년이 걸린다. 따라서 쉽지는 않으나 시스템으로 이를 보완해야 한다. 속칭 '카드깡' 이 대표적인 예다. 이를 방지하려면 '페널티' 를 강화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다. 범법자를 엄중 처벌해 본을 보여야 한다.

▶지=동감한다. 의식개혁과 교육만으론 힘들다.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시스템이란 성악설에 기초한 것이 아닌가. 예전에 한 외국 지자체는 문앞에 자기가 낸 세금영수증을 붙여놓도록 했다. 그러자 주민들이 불성실 신고자를 손가락질하며 그 집 대문을 발로 차고 다녔다고 한다. 정부 혼자의 힘으로 시스템을 강요하기 보다 시민의 힘을 빌릴 줄 아는 지혜도 필요하다.

▶홍=교육 시스템에도 문제가 많다. 모두 인성교육이 중요하다고 하나 입시 위주의 교육체계와 부모의 출세지향주의적 독려 속에 올곧은 성품을 길러주는 교육은 설 땅이 없다.

▶지=문제가 있으면 먼저 원인을 분석해 시스템을 바로잡아야 하는데 우리는 잘못한 사람을 처벌하기 일쑤다. 일본의 도요타 자동차에선 직원 4만명이 매년 3백만개의 문제를 찾아내 바로잡는다. 하지만 우리 기업은 문제점을 덮기에 급급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니 바로잡으려야 잡을 수 없다.

▶유=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원인을 분석하고 해결하는 데 필요한 게 바로 매뉴얼이다. 이를 어겼을 때 벌을 주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경우 법.제도.규정 등이 도저히 지키기 어려울 정도로 비합리적인 경우가 많다. 여기서 부정부패가 생겨난다. 따라서 매뉴얼을 통해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것 못지 않게 잘못된 시스템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홍=기초를 다지려면 단기적으로는 시스템을 개선해야 하고, 장기적으로는 의식개혁이 필요한 것으로 정리할 수 있겠다. 하지만 페널티에 의존한다는 것은 한계를 안고 있다. 기성세대는 물질주의적 사고가 체화돼 있어 늦었지만 젊은이들에게는 문화적.감성적 교육의 기회를 더 많이 주어야 한다.

▶유=러시아의 최근 경기회복은 유가가 올랐다는 측면 보다 세금이 걷히기 시작했다는 데에 더 큰 원인이 있다. 세율을 대폭 낮추고 탈세범에 대한 처벌을 크게 강화한 점이 적중했다. 시스템 개선은 원칙에 충실하면 이뤄진다. 룰을 지키면 기초가 선다. 쉽지는 않지만 의식개혁운동이 필요하다.

▶홍=우리 국민은 세계 어느 민족 못지 않게 좋은 시스템을 만들 수 있는 근면함과 열정, 좋은 두뇌를 갖고 있다. 시리즈가 이런 장점을 적극 살리는 방향으로 이어졌으면 한다. 문화교육이 중요하며 이를 통해 국민의 '문화적 응집력' 을 강화해야 한다.

▶지=양질의 리더를 뽑을 수 있는 정치선거 시스템이 급선무다. 사회성과 창의력을 갖춘 인적 자산을 양성하는 교육시스템도 시급하다. 분석.설계.계획에 돈과 시간을 더 많이 투자하고, 문제를 적극 발굴하는 사회운동도 펴야 한다. 원인을 캐내 바로잡으려는 노력 없이 기초를 다질 수 없다.

정리=박신홍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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