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대 사양하면 욕하는 사회, 윤리경영은 욕먹을 각오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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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호 30면

구학서 신세계 회장

Q.윤리경영의 적은 누구입니까? 회사 내부에도 있고, 외부에도 적이 있겠죠? 윤리경영에 대한 내부의 저항도 윤리경영의 적이라고 할 수 있나요? 이와 같은 내부 구성원의 저항은 어떻게 해야 완화되나요? 윤리강령이 있어도 사문화하면 소용없지 않습니까?

경영 구루와의 대화편 구학서의 윤리경영 ④

A.가장 무서운 적은 바로 윤리경영에 대한 공감대 형성을 방해하는 내부 구성원들입니다. 내부의 적이죠. 경영진에게는 문제를 제기하지 않으면서 동료에게 윤리경영에 대해 부정적인 이야기를 퍼뜨리는 사람들입니다. 윤리경영에 대한 내부의 불만 세력, 윤리경영에 대해 반대 논리를 내세우는 내부의 안티들이라고 할 수 있죠. 그래서 교육을 통해 지속적으로 윤리경영을 강조해야 합니다.

구성원 가운데서도 경력사원들이 상대적으로 이런 문제를 많이 일으킵니다. 신세계도 회사가 성장하면서 경력사원을 많이 뽑았는데 이들 가운데 윤리경영에 딴지를 거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습니다. 외국 기업에 근무할 때보다 더하다는 둥 다른 회사 다하는 걸 왜 우리만 안 하느냐는 둥. 그런데 막상 윤리경영에 어긋나는 사고가 나서 징계를 하려고 보면 신입사원 때부터 윤리경영 교육을 받은 사람보다 외부에서 온 경력사원이 걸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미 접대 등 윤리경영에 반하는 문화에 젖어있기 때문이겠죠.

뿌리치기 힘든 내부의 업무상 유혹도 있습니다. 신세계 같은 유통업체는 명절 때 기프트와 상품권을 많이 팔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입장과 선물 돌리지 말라는 윤리경영은 서로 배치됩니다. 그래서 영업을 맡은 직원들이 한때 저에게 이건 문제가 있다고 어필을 많이 했습니다. 그때 딱 잘라 말했습니다. “윤리경영을 위해서라면 명절 때 기프트 안 팔려도 좋다.”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구매를 총괄하던 어느 임원이 명절 때 협력업체에 회사 차원에서 약소한 선물을 돌렸다고 자랑삼아 이야기했습니다. 선물을 받을 입장에 있는 사람으로서 받기 전에 먼저 보냈으니 윤리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죠. 그래서 제가 크게 나무랐습니다. 신세계에서 명색이 구매를 총괄하는 임원이 선물을 보냈는데 협력업체가 그냥 넘어갈 수 있습니까? 아마 그 임원에게 다들 선물을 보냈을 겁니다. 협력업체를 선정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 보냈으니 더 고가의 선물을 보냈겠죠. 결과적으로 협력업체에 더 큰 부담을 준 셈입니다.

선물을 안 돌린다는 게 참 어려운 이야기이기는 합니다. 더욱이 선물을 돌리다가 중단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받다가 못 받으면 상대방도 서운해하지 않겠습니까?

읍참마속(泣斬馬謖)의 심정으로 아끼던 직원을 내보낸 적도 여러 번 있습니다. 사람이 괜찮고 능력도 있어 앞으로 잘나가겠구나 했던 직원이 사소한 부정을 저질렀을 땐 참 안타깝습니다. 한 번의 실수였고 내보내기는 아깝지만 그래도 형평성이라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 내보냅니다. 형평에 어긋나면 구성원들이 수긍을 못 하거든요. 누구는 괜찮고 누구는 안 되고 하면 그런 일을 겪고도 구성원들이 교훈을 얻을 수 없습니다. 한 사람에게 벌을 주어 백 사람을 경계하는 일벌백계(一罰百戒)야말로 윤리경영의 중요한 원칙입니다.

윤리경영에 영향을 미치는 외부 환경으로는 언론과 NGO를 꼽을 수 있습니다. 윤리적으로 문제가 없는 경영 행위에 대해 비윤리적이라고 비판을 하면 윤리경영을 하는 회사로서는 타격이 크죠. 일례로 외환위기 때 신세계 대주주가 개인 지분을 처분해 마련한 돈으로 증자에 참여해 광주 신세계의 자본금을 늘린 일이 있습니다. 자본잠식 상태에 놓인 회사를 정상화하기 위한 자구노력이었죠. 당시 참여연대가 이에 대해 편법 증여를 하기 위한 것인 양 매도했는데 이런 공격을 당하면 윤리경영을 하는 회사로서는 이미지가 실추됩니다.

내부자들도 회사 이미지를 실추시킬 일은 하지 않도록 뉴스페이퍼 테스팅을 하게 합니다. 한마디로 신문에 부정적으로 기사화될 일을 절대 하지 말라는 거죠. 가령 매장을 지어야 하는데 인허가가 빨리 안 난다고 해서 관행적으로 주는 촌지를 주지 말라고 합니다. 그랬다가 신문에 나고 대표자가 불려다니고 회사 이미지가 실추되느니 차라리 건축 기간이 연장되는 편이 낫다는 거죠. 신문에 나지 않도록 하는 건 윤리경영의 최저 기준을 지킨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사실 가장 큰 적은 접대 안 받겠다는데 도리어 손가락질하고 따돌리는 사회적 풍토입니다. 접대 문화가 없어지려면 신세계 페이 같은 움직임에 다른 업체도 동참해야 합니다. 동참하는 회사가 많지 않아 사회적으로 확산이 안 되면 지속하기가 어렵죠. 밥값을 각자 내는 게 쑥스럽기는 하지만 선진 기업들은 다 그렇게 하거든요. 우리도 하루빨리 제 몫을 각자 내는 합리적인 문화가 이른바 대세가 되어야 합니다. 다행히 요즘 젊은 세대는 조금씩 바뀌고 있습니다.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은 윤리경영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가정의례준칙이 없어지고 난 후 결혼식 비용이 크게 늘어났습니다. 이러다 호화 결혼식이 일반화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 정도죠. 신세계도 호텔을 갖고 있지만 호텔 영업이라는 차원에서는 이런 풍조가 덕이 될 수도 있어요. 그런데 결과적으로 이런 결혼식은 보통의 하객들에게 부담을 줍니다. 그런가 하면 요즘 일부에서는 친척·친지들만 모여 간단히 결혼식을 합니다. 그랬다가 주변 사람들에게서 왜 연락을 안 했느냐는 핀잔을 듣기도 하죠. 윤리경영도 이렇게 욕먹을 각오로 하는 겁니다. 사회 지도층이 먼저 친척·친지들만 초대해 결혼식 치르고 나중에 주변에 알리는 게 바람직하듯이 윤리경영도 경영진이 솔선수범해야 합니다.

신세계에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의 일입니다. 제 바로 밑에 있던 간부가 명절 때 집으로 선물 바구니를 들고 찾아왔습니다. 일단 선물은 받고서 똑같은 선물을 그 사람에게 보냈습니다. 그 후 간부회의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삼성에 근무하는 동안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뭘 해주는 건 봤지만 명절 날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찾아다니는 일은 없었다. 그런데 신세계에 와서 이런 일을 겪었다.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은 앞으로 인사상 불이익을 주겠다.”

선물 보내기를 용납하지 않겠다고 공식적으로 선언을 한 것이죠. 저의 집에 왔던 간부의 실명을 밝히지는 않았습니다. 그 후로 이런 일이 없어졌습니다. 이런 상납이 암암리에 성행하면 공정한 인사가 이루어지기 어려워요. 상납을 받기 시작하면 그쪽으로 기우는 게 인지상정입니다. 그러다 보면 사내에 라인, 비선조직 같은 게 생기고 줄서기가 조직문화로 뿌리를 내리게 마련이죠. 이런 문화가 고질이 돼버리면 매관매직까지 가는 겁니다. 윤리경영의 첫 단계에서 주저앉고 마는 것이죠. 그래서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조직에 충성하되 개인에게 충성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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