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리티의 소리] 한국에서 사회사업 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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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나는 비영리단체에서 사회사업을 하는 분들을 존경한다. 기업에만 몸담았다가 6년 전 사랑하는 고교 1년생 아들을 잃고 내 스스로 청소년폭력 예방을 위한 사회운동에 뛰어든 뒤 이 일이 이토록 힘들 줄 몰랐기 때문이다.

사회사업의 경우 대개 신앙심의 발로로, 혹은 가업을 잇거나 사회복지계통 전공을 살리기 위해 이 분야 일을 시작한 분들이 많지만 나처럼 특별한 사연으로 인해 뛰어든 사례는 극히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다.

주위 분들이 이 일을 하면서 힘든 것이 무엇인지를 물어올 때 나는 항상 이렇게 대답한다. "첫째는 이 일을 하다 보니 아들에 대한 그리움이 더 사무쳐 괴로울 뿐 아니라 가족에게 미안하다는 점이고, 둘째는 잘 아는 사람들로부터 흔히 '미안하다' 는 말을 듣게 돼 괴롭다" 고 말한다.

그 말 앞에는 "후원을 못해줘서…" 가 생략돼 있는데 내가 혹시 남에게 부담감을 주고 있지나 않은지 항상 미안하고 거북한 때가 많다. 사람의 만남은 그 자체로 편해야 한다. 미안한 마음을 들게 한다는 것은 참으로 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남들은 우리 청소년폭력예방재단(청예단)이 정부예산도 잘 지원받고 이곳저곳에서 후원금도 잘 받는 줄 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본의 아니게 언론에 많이 노출됐고 정부의 고위 공직자들.정당대표.국회의원들이 우리 사무실을 자주 방문해 "국민의 이름으로 존경을 표한다. 어떻게 그런 아픔을 딛고 개인으로서 국가가 해야 할 일을 하다니…" 하면서 지원을 약속한 일이 많았다. 물론 나 역시 뭔가 좀 힘이 되지 않을까 기대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다 소용없었다.

나는 순수한 마음에서 많은 동창.선후배들과 전 직장동료들, 그리고 자식을 키우는 일반 학부모들이 십시일반으로 매월 몇푼씩만 후원해 준다면 이 단체가 목적한 활동들을 하는 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것도 착각이었다. 모두가 생존을 위한 경쟁시대에 살다 보니 시민단체에까지 눈 돌릴 여유가 없는 것이 우리네 현실이고, 이웃사랑문화가 약한 게 한국사회란 사실도 새삼 알게 됐다.

권력이 있거나 정치적인 단체는 정부예산도 잘 가져다 쓰지만 우리 청예단처럼 힘 없는 시민단체들은 어림없다는 현실도 알게 됐다.

어떻게든지 일을 하기 위해 정부 프로젝트도 간혹 신청해보지만 봐주는 것처럼 생색을 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우리가 부담해야 하는 부분도 있어 이 역시 그리 탐탁지 않은 실정이다. 결국 비정부기구(NGO)는 시민의 힘으로 자생(自生)하는 것이 최선인데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지가 후진국 NGO의 핵심문제라 할 수 있다.

상담 유료화와 신문 유가화는 물론 모금함.후원전화 등 온갖 노력을 기울여봤지만 결과는 신통치가 않다. 외국에서라면 민간 후원금이나 정부 지원도 문제 없다고 하는데 우리네 실정은 다르다.

그래서 묵묵히 이 일을 하고 있는 분들을 보면 아주 위대한 사람이거나 아니면 바보 또는 사기꾼이란 생각마저 든다. 우리나라는 과거에 사회사업을 빙자한 돈벌이 사례가 많았고 그런 사람들 때문에 선의의 사회사업가까지 피해를 봤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에서 사회사업이나 시민운동을 한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존경받을 만하다.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꿋꿋이 이러한 일을 지속하고 있는 단체나 개인은 우리 모두의 위대한 자산인 셈이다.

세상에 꼭 필요한 일을 하는 단체가 그 순수성을 지키고 사회에 기여하기 위해선 뜻 있는 분들의 사랑과 동참이 절실히 필요하다. 아울러 관련제도도 개편돼야 한다. 술값 영수증보다는 공익단체에 기부한 영수증이 더 인정받는 제도로 바뀌어가야 한다.

공익단체가 지불하는 통신비나 우편료도 선진국처럼 환불해줄 필요가 있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을 민간기구가 대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6년간 수많은 활동을 해 온 청예단도 분명 우리사회의 소중한 자산이다. 그런데 이런 일들을 한 개인의 힘만으로 지속하라고 하는 것은 너무나 가혹하다. 사회사업에 뛰어든 개인들이 무슨 투쟁하듯 싸워야 하는 현실을 방치해서야 되겠는가.

김종기 청소년폭력예방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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