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법무장관이 '정권 재창출'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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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안동수(安東洙) 신임 법무부 장관의 취임문건을 둘러싼 파문이 쉽게 가라앉을 것 같지 않다. 처음에는 어처구니 없는 내용이 문제가 됐지만 말썽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安장관이 작성한 것이 아니라고 앞뒤가 안맞는 주장을 하는 바람에 도덕성까지 의심받는 사태로 번지고 있다.

문건 내용은 한마디로 귀가 의심스러울 정도다. '가문의 영광' '태산 같은 성은(聖恩)' 등 봉건 왕조국가에서나 들었을 법한 문장은 그래도 애교스럽다. '대통령님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겠다' 고 두번씩이나 강조하고 있으니 아무리 충성서약이라고 해도 지나치고 낯간지럽다.

민주국가에서 장관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 일하겠다고 다짐하지 않고 대통령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고 맹세하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특히 "정권 재창출을 위하여 모든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라는 부분에 이르러서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법치국가에서 법무부 장관은 원칙과 기준의 표상이다. 행정업무만 능률적으로 처리하면 되는 다른 부처와 달리 법 집행과 해석의 행정부 최고 책임자로서 공정성과 형평성을 생명처럼 여겨야 하는 자리다.

도대체 법무부 장관이 어떤 방법으로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모든 노력을 하겠다는 뜻인지 묻고 싶다. 가뜩이나 검찰의 정치적 중립이 도마에 올라있는 시점에 '정권 재창출' 운운하는 법무부 장관에게 내년 지방선거나 대선 관리를 믿고 맡길 수 있을지 벌써부터 걱정이 아닐 수 없다.

문건 파문이 安장관의 7년에 불과한 검사 경력, 26년이나 검찰을 떠나있었던 현장감 결여, 간부직이나 행정 관리직을 경험해보지 않은 정치인이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실수요, 해프닝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문건 작성자를 둘러싼 어설픈 변명이다. 이미 변호사 사무실 여직원이 구체적으로 설명한 문건작성 경위를 뒤늦게 어설픈 변명으로 뒤집은 행위는 공직자로서 자질을 의심케 한다.

공직자의 거짓말은 도덕성과 직결된다. 어떤 경우라도 진실만이 파장이나 부작용을 최소화한다는 진리를 왜 모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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