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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학규의 선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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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시간은 많은 것을 바꿔놓는다. 그때 그와 지금 그는 다르다. 기대치가 높아졌다. 그에게 힘이 된 건 두 차례의 재·보선 승리였다. 지난해 4월 정세균 대표의 요청에 따라 인천 부평을과 시흥시장 선거에 투입돼 승리를 이끌었다. 지난해 10월 재·보선 성과는 더 컸다. 수원 장안에 직접 출마하라는 권유를 거두고 측근을 당선시켰다. “반성이 끝나지 않았다”며 출마를 안 했다.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다시 그의 거취가 관심이다.

22일 오후 춘천시 동내면 거두리를 찾았다. 그의 농가가 있는 곳이다. 서울에선 함박눈이 내리던 그날 대룡산 기슭에는 진눈깨비가 쏟아졌다. 1시간을 넘게 기다리니 그가 집으로 돌아왔다. 부인 이윤영 여사와 시내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다. 예상치 못한 방문에 반가워하면서도 자신의 거취에 대한 질문엔 “별 할 말이 없다”고 손사래를 쳤다. 그는 앉아서 내내 닭 키운 얘기만 했다. “지난여름에 오골계가 산비탈에서 달걀을 품었는데 배 속 털 빼고는 털이 다 빠지도록 고생을 하더라고. 비가 와서 달걀이 떠내려갈 듯해도 결국 품어서 병아리로 부화시키더구먼.” 급기야 닭장으로 이끌어 방금 어미가 낳은 달걀을 보여준다. 오골계·토종닭·칠면조 등 족히 40마리는 돼 보였다. 그날 8개의 새 달걀을 주워 왔다.

가만 있으면 끝까지 닭 얘기만 할 것 같아 “언제 정치 일선에 복귀할거냐”고 물었다. 그는 “사람이 들고 나는 일이 크게 다른 게 있나. 내가 할 일이 있느냐, 뭘 해야 하나가 중요하다”고만 했다.

그는 농가에 머무르며 시대정신을 고민했다. 그는 “자꾸 어려워지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거기서 갈등과 다툼이 생기고 있다. 그것을 정치가 해결해야 한다. 그걸 해결하는 게 시대정신”이라고 했다. 정치가 결핍과 좌절을 치유해야 한다는 거다. 그가 부화시킨 일종의 ‘손학규 어젠다’다.

부재로 인한 돋보임은 그 정도면 됐다. 정치는 스님이 산속에서 수행하는 일과 다르다. 현장에서 부딪치고 고민하는 일이 우선이다. 민주당 내에선 그에게 다음 달께 지방선거 선대위원장을 맡길 거라는 얘기가 나온다. 당장 닥쳐온 선거도 선거지만 민주당에는 사람이 더 필요하다. 국민의 시선을 민주당으로 끌어오려면 ‘드라마’가 있어야 한다. 정세균 대표와 정동영 의원이 경쟁하지만 그들만으론 부족하다. 오죽하면 야권은 서로 고인이 된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계승 경쟁을 벌이고 있겠나. 당을 위해서도, 그를 위해서도 함께 경쟁의 대열에 참여해야 한다. 그가 칩거해 시대정신을 고민했다면 그것도 논쟁의 장에 내놓고 평가를 받아야 한다. 민주당에는 계파와 지분의 싸움이 아닌 지속적인 새 어젠다가 필요하다. 그들이 경쟁해 사분오열된 범야권의 지표를 만들어야 한다.

신용호 중앙SUNDAY 정치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