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세상] 고독한 글쓰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9면

"그 어느 쪽으로부터도 환영받지 못하는 고독한 입장이 특정한 입장을 전략적으로 선택한 논자들에게 양비론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 실상 진실은 이러한 철저한 고독과, 단선적인 흑백논리로는 포착할 수 없는 복합적인 사유의 언저리에서 어른거리고 있는 것이리라. 만약 그러한 태도가 양비론이라는 이름으로 비판받는다면, 나는 그 비판을 기꺼이 접수하겠다. "

속 것들이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만물이 푸른 5월, 글쓰기가 얼마나 투명해야 되는지 생각하게 하는 글들이 여느 때보다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문학평론가 권성우씨는 최근 평론집 『비평과 권력』(소명출판.1만원)을 펴내며 고독과 자유를 말하고 있군요.

권씨는 주류의 어떤 비평가 집단에도, 그렇다고 거기에 반대하는 진영에도 속하지 않고 활동을 펼치고 있는 몇 안되는 중견평론가입니다.

이 책에서 권씨는 주류의 비평가 집단과 또다른 비평가 집단, 그 사이에서 비평과 권력의 문제를 논쟁적으로 살피고 있습니다. 작품을 분석.평가하는 비평에는 그 속성상 권력이 따르게 마련인데도 이익이나 권력을 위해 작품을 상찬하거나 비판하는 비평적 자세를 논박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권씨는 "그 누구도 무수한 인연의 고리와 다양한 사회적 관계망으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인 의미에서 비평가는 그 관계들로부터 자유로울수록, 고독할수록, 주체적이며 독립적인 비평을 쓸 수 있으리라" 고 되묻고 있습니다.

"천도(天道)도 옳으냐 그르냐 물어야 하거늘 지상의 한 시인이 남긴 것들에 대해서도 물어야 한다. 그것이 무엇인가를. "

고은 시인은 『창작과비평』여름호에 실린 평론 '미당 담론' 에서 미당 서정주 시인이 그르다고 준엄하게 비판하고 나섰습니다.

자신을 시단에 내보낸 스승이면서 "불가결의 혈연으로 시작된 그 인연" 의 고리를 단호히 끊으며 미당의 친일과 권력지향적 삶을 시에 대입하며 삶과 시를 전면 부정하고 있더군요.

미당의 부정적인 측면은 그의 생전에도 일부 문인, 특히 참여문학 진영의 젊은 문인 등에 의해 많이 지적되었지요. 그 쪽의 큰 어른이랄 수 있는 고씨가 미당에 대한 부정론의 '결정판' 을 내놓은 것으로 읽힙니다.

"돌아간 분들에 대해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쓰라려. 그 때의 상처가 젊은이들의 가슴에 생각보다 더 아프게 새겨진 것 같아. "

김지하 시인은 다음주 나올 『실천문학』여름호에 실린 대담에서 1991년 5월 이른바 '분신(焚身)정국' 을 질타한 칼럼 '죽음의 굿판 걷워치워라' 가 잘못됐다며 사과하고 있습니다.

신화적 선배로 알고 있던 김씨의 뒤통수를 치는 듯한 충격적인 발언에 마음 아팠을 당시의 운동권에 유구무언이라 사죄하며 화해를 청하고 있습니다.

고은씨는 평론 마지막 부분에 미당시 '다시 비정(非情)의 산하에' 두 행을 인용해 놓았더군요. "탈색과 표백은 아직도 덜 되었는가?/백의동포여. " 라고.

위 세 분의 글을 읽으며 글의 준엄함에 숙연해지는 한편 아직 표백이 덜 된 백의민족의 산하에는 자유로운 글쓰기를 옥죄고 있는, '비평과 권력' 의 그 무엇이 여전한 것 같아 착잡합니다.

이경철 문화부장대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