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리뷰] '…케임브리지 중국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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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중국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에는 여러 장벽이 있다.

시간과 공간적으로 뻗쳐 있는 엄청난 부피가 중국사에 접근하는 이를 압도하는 것은 물론이고 사실(史實)이 한자(漢字) 기록으로 남겨질 때 끼어든 중국 중심적 역사 관점 등이 종종 역사 속의 진실을 흐려놓기 때문이다.

복잡한 왕조 변천사에 존재하는 여러가지 요소들, 여기에 한족(漢族)과 이민족간의 끊임없는 교류와 갈등을 충분히 감안하지 않으면 중국의 역사 읽기는 방향을 잡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기 십상이다.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케임브리지 중국사』는 방향이 제대로 잡혀진 책이다.

역사를 통사(通史)적으로 서술할 때 생겨나는 지루함과 번잡성을 피했고, 역사를 주제별로 풀어갈 때 발생하는 단순함도 벗어버렸다. 형식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역사의 통사적 서술과 주제별 서술의 '혼합형' 이다.

중국의 문명과 사회라는 주제로 중국사를 연구해 온 저자의 관점은 다음과 같은 대목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중국문명이 중동에서 발생한 고대문명의 분파가 아닌 바는 명백하다. 그렇지만 중국을 세계의 위대한 문명으로 올려 놓은 것은 문명의 고립성이나 순수함이 아니라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개념들, 사회형태, 기능.기술들이고 중국은 (이를 통해) 성장하고 적응하며 확대될 수 있었던 것이다. "

저자의 이런 관점은 첫 장을 이루고 있는 '중국 문명의 기원' 에서 더욱 확연해진다. 책에서 경계하는 것은 중국인들이 자신들의 문명을 중국인만의 '공적' 이라고 내세우는 이른바 중화주의적인 입장이다.

저자는 중국인들이 복잡한 문명으로 갑자기 이동했고 많은 인구를 조정할 수 있는 관념과 기술을 발전시켰다는 점을 중국적인 특징으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하지만 밀과 전차(戰車), 사육한 말, 쇠와 나무로 된 화살 등 중국 고대 문명의 토대를 이루고 있는 많은 요소들이 문명간의 교류를 통해 중국에 전래됐을 가능성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 중국인들의 태도를 비판하고 있다.

이처럼 저자는 서로 다른 문명간의 상호작용,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 구성하는 사회 내부의 독특한 시스템에 무게를 두고 역사를 서술한다.

그 뒤에 이어지는 철학적 기초, 관료제국의 건설, 불교.귀족제.이민족 군주들, 남부로의 이동, 이민족의 통치, 만주와 제국주의 등 10개의 주제에서도 저자의 관점은 일관되게 나타난다. 중국사의 전개과정에 관심을 둬왔던 사람들이라면 저자가 시대별로 엄선한 이같은 주제에 대체로 만족할 것이다.

한(漢)대에 본격적으로 자리잡기 시작한 관료제도는 후에 중국문화의 골간을 이루는 향신(鄕紳)계층의 제도적 기틀에 해당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주제이고, 송(宋)대에 들어와 대규모로 진행된 한족의 남하(南下) 역시 한족의 판도가 양쯔(揚子)강 이남까지 본격적으로 확대되는 사건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이렇듯 시기를 따라가는 평면적인 형식에 시대적인 특징을 넣어 저자는 중국사를 재구성했으며 기존에 나온 중국사 연구성과를 깔끔하게 정리.종합함으로써 상당한 설득력도 확보했다.

그러나 제한된 지면에 다양하고 복잡한 주제를 압축하는 과정에서의 부족함도 엿보인다.

춘추시대 법가(法家)의 연원과 유가(儒家)와의 상호 관계 등이 미진하게 다뤄졌고 송대 한족의 대거 남하를 평면적으로 기술하는데 그침으로써 한족에 독특하게 형성된 이주(移住)문화와 이로부터 비롯한 사회구조적 특성들을 놓치고 있다.

각 장에서 발견되는 이같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중국사를 개괄적으로 이해하려는 이들에게는 매우 훌륭한 안내서다.

중국사 전개의 각 시기와 주제별로 풍부한 사진자료를 붙였고, 중국사의 흐름에서 반드시 읽고 건너가야 할 중요 고리들을 별도의 항목으로 처리하는 등 중국사를 입체적으로 설명하려는 의도가 매우 진지하기 때문이다.

유광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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