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대학이 우리 사회 ‘동맥경화’ 풀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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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소득계층 상위 25% 자녀의 21개 상위권 대학 진학률(21.1%) 또한 하위 25% 진학률(2.7%)의 약 8배에 달한다. 이러한 차이는 우리 사회 선망 직업 진입자 배경에서의 차이로 이어지고 있다.

신규 임용된 판사 가운데 특목고와 강남권 고교 출신의 비율이 1999년 9.6%에서 2009년 37%로 10여 년 사이에 거의 4배로 급증했다. 의사, 교직자, 주요 언론사의 언론인 등 사회의 중요한 직업에서 특정 집단이 차지하는 비율도 비슷한 속도로 증가하고 있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와중에 사회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대학이 해야 할 역할은 무엇일까? 사회 계층 간 이동이 어려워지는 것은 동맥경화증에 비유할 수 있다. 몸에 동맥경화증이 심해지면 혈류를 원활히 하기 위해 약을 처방하듯이, 우리 사회도 특별처방을 해야 하는 시점에 다다른 것 같다.

근원적인 처방은 사회 전반적인 체질을 바꾸는 것이지만, 당장 고려해야 할 것 중의 하나는 대학입학제도 개선이다. 가장 큰 문제는 등록의무형 수시입학제도다. 이 제도는 학생들의 다양한 특기와 적성을 감안해 수능 전에 선발함으로써 성적 위주의 획일성에서 벗어나도록 하겠다는 목적으로 2002년에 처음 도입되었다.

그러나 수시입학제도는 특정 집단의 상위권 대학과 인기학과 독점을 심화시키고 있다. 2007학년도에는 전체 신입생의 51%가 수시전형으로 선발됐고, 2011학년도 입시에서는 61%를 선발하게 되어 특별전형인 수시모집이 거꾸로 보편적인 전형이 되고 말았다. 수험생 입장에서는 비록 선호하는 학과나 대학이 수시를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 대학에 합격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일단 수시에 지원하게 된다.

2012학년도부터는 수시전형의 지원 가능 횟수를 수험생당 다섯 차례로 제한한다고 하는데, 그래도 특정 집단의 인기대학 독점 완화에는 별다른 기여를 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 사회가 수시 확대로 치닫는 사이에 미국 하버드대는 2007년부터 수시모집을 중단하는 결단을 내렸다. 핵심 이유는 입학제도를 보다 단순하고 공정하게 함으로써 사회의 불평등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미국의 수시입학제는 합격하면 반드시 그 대학에만 등록해야 하는 ‘등록의무형(early decision)’과 합격하더라도 정시모집에도 지원이 가능한 ‘등록자유형(early action)’이 있다. 등록의무형의 경우에는 거의 장학금을 주지 않아 가난한 집안 출신 학생들은 아예 지원조차 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예일대와 스탠퍼드대는 2004학년도 가을 신입생부터 등록의무형을 등록자유형으로 전환했다. 하버드대도 그동안 등록자유형을 택했으나 그마저도 소수인종이나 소외지역, 그리고 가난한 지역 고등학생들에게는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판단해 폐지한 것이다.

대학의 입시제도가 복잡해지면 고등학교의 대학진학 상담 서비스의 접근성과 질이 대학 진학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입제도가 복잡해지자 학부모가 직접 나서거나 값비싼 입시전문학원의 지원을 받으면서 인기 학과·대학 진학에서의 소득계층 간, 지역 간 격차가 더욱 커지게 되었다. 이 문제를 완화하려면 우선 수시모집 비율을 낮추고 대입제도를 단순화해야 한다. “그러면 다시 한 줄 세우기가 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할 수 있지만, 최근 도입된 입학사정관제가 이 우려를 줄이는 대안이 될 수 있다. 특히 입학사정관제로 선발한 학생들의 출신 고등학교, 지역, 부모의 배경적 특성 등이 매년 얼마나 다양해지고 있는가를 핵심 평가 기준으로 삼아 대학이 이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유도해야 한다.

기본적으로는 상위권 대학들은 사회불평등을 줄이는 데 기여하겠다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 나아가 국가도 대학들이 그러한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정책을 통해 유도할 때 사회의 동맥경화증은 조금이라도 완화될 것이다.

박남기 광주교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