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25시] 오락가락 고이즈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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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일본 총리가 오락가락하고 있다.

야스쿠니(靖國)참배, 집단적 자위권 등 한국.중국 등 주변국과 민감한 사안에 대해 말이 매번 다른 것이다. 고이즈미는 지난 달 자민당 총재선거에서는 "종전기념일인 8월 15일 야스쿠니 신사에 공식 참배하겠다" "집단적 자위권 실현을 위해 헌법 해석 변경을 검토하겠다" 고 공언했다.

그러나 지난 7일 총리 취임 후 첫 중의원 시정연설에서는 야스쿠니신사 참배, 집단적 자위권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다. 고이즈미 주변에서는 "총리가 된 후 달라진 것" 이란 해석이 나왔다. 총재 선거전에서는 보수우익의 표를 의식해 어쩔 수 없이 '우경화 경쟁' 을 벌였지만 당선 후에는 내정.외교 사이에서 균형을 찾았다는 것이었다. 일본 외교가에서도 이렇게 될 것이란 예상이 많았다.

고이즈미는 9일 "개인적으로 야스쿠니신사에 가겠지만 공식참배는 주변국가 감정을 검토해 신중히 판단하겠다" "헌법해석 변경은 매우 신중해야 한다" 고 말해 '궤도수정' 이란 평을 받았다.

그런 고이즈미가 다음날 입장을 완전히 번복했다. 그는 10일 공식참배 의사를 밝히더니 14일 국회에서는 "주변에서 비판한다고 중단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며 총리로서 공식 참배할 의사를 명확히 했다.

집단적 자위권에 대해서도 "미.일 안전보장을 위해선 연구하고 국민의 이해를 구해야 한다" 며 헌법해석을 변경해서라도 시행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마치 '치고 빠졌다가 다시 치고 나오는' 형상이다.

고이즈미의 이런 자세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균형감각을 가지려다 보수 우익세력의 반발에 밀려 우익 강경론으로 돌아섰다는 분석과 함께 고단수 작전설도 나온다. 연립여당인 공명당이 정교분리를 명시한 헌법을 이유로 야스쿠니신사 공식참배를 반대하는 점을 감안해 일단 공명당을 회유하기 위해 슬쩍 빠졌다가 본색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또 한 외교소식통은 "고이즈미가 야스쿠니신사 등에 대해 깊은 생각 없이 발언했다가 찬반양론 등 여러 외부환경에 부닥치면서 수정해가는 과정" 이라고 분석했다. 무엇이 고이즈미의 참뜻인지는 알기 어렵다.

앞으로 그의 생각이 또 바뀔 수도 있다. 그러나 고이즈미가 이같이 오락가락한다면 주변국과 국내에서 신뢰가 떨어질 것만은 틀림없다.

오대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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