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 소규모 공장서 만능자 국산화 개발 성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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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우리가 만든 공산품을 우리 자로 잴 수 있게 됐습니다. "

남의 공장 한쪽을 빌려쓰고, 직원이라고 해야 4명이 전부인 지방의 가난한 기업이 정밀계측기기인 버니어 캘리퍼스(vernier calipers)의 국산화 초석을 놓았다.

10일 경남 마산시 중리공단에 소재한 화성와이어커팅. 일급 장애인으로 47년간 쇠를 다뤄온 장인(匠人) 조진치(趙眞治.61)씨와 송창수(宋昌洙.59)전무는 서로 얼싸안았다.

최근 개발한 버니어 캘리퍼스의 품질이 일본 제품에 비해 손색이 없다는 평가를 대덕밸리의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서 받은 것. 국내에서 가장 권위있는 기관이 수년간의 개발노력을 인정해주는 순간이었다.

기본 정밀계측기기인 버니어 캘리퍼스는 원통 안팎의 지름과 깊이.길이 등을 재는 만능자. 실업계 고교생과 공대생들에게는 필수품이며 공업 현장에서도 많이 쓴다. 수요는 많지만 공정이 까다로워 외제를 수입하는 형편이다.

큰 기업들도 개발할 엄두를 못낸 버니어 캘리퍼스에 이 회사가 달려든 것은 1998년. 공장이 97년 경제위기로 넘어지자 맨주먹으로 재기를 노렸다. 이때부터 처남.매부 사이인 趙씨와 宋씨의 고생길은 시작됐다.

趙씨는 잠자는 것만 빼고는 휠체어에 의존해야 하는 일급 장애인이다. 대.소변을 수발받고 수없이 밤샘을 하며 쇠를 깎았다. 자전거포를 운영하던 부친을 이어 14세 때부터 쇠를 만졌다. 19세 때 소아마비를 얻어 휠체어에 의지해 지내는데, 집중력이 뛰어나 기술력은 전국 제일임을 자부한다. 선반 등 주요 가공기기는 趙씨가 일하기에 좋도록 땅을 50㎝ 가량 파고 설치했다. 아들 형섭(24)씨는 대학을 중도에 포기하고 부친의 손발이 돼 3대째 쇠를 만지고 있다.

宋씨는 재료를 구하고 기술을 자문하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녔다.

그러나 눈금.디자인.도금 등 모든 분야의 국내 기반산업이 취약해 애를 먹었다. 이럴 때마다 찾은 곳이 한국표준과학연구원(http://www.kriss.re.kr). 이곳의 박사들은 처음엔 "소기업이 하면 얼마나 하랴" 고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시제품들이 점점 나아지는 것을 보고 연구원으로 일하겠다고 자청하는 박사들도 나왔다.

자금 부족이 큰 애로사항이다. 표준연의 주선으로 기술개발지원자금 1억원을 신청했으나 연구소.연구원 등 요건이 안돼 불투명한 상태다.

宋전무는 "기술자립에 필요한 정밀계측기 국산화에 성공했으나 자금이 없어 대량생산을 못하게 될까봐 안타깝다" 고 말했다.

마산=이석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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