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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성매매금지법은 필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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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최근 흉악한 성폭행 범죄가 일어나자 성매매금지법에서 원인을 찾으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는 위험한 발상이다. 성폭행과 성매매는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 성폭행은 타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한 범죄행위일 뿐이다.

성매매와 관련된 대표적 국제규범은 1949년 유엔 총회 결의안 317조다. 결의안은 ‘성매매 목적의 인신매매, 성매매 알선, 성매매 업소의 소유와 관리에 대한 처벌’을 강조했다. 이에 따라 대부분 선진국은 성매매 업소의 소유와 성매매 알선행위를 금지했다. 미국 정부는 ‘성매매가 인간을 비인간적인 상품으로 전락시킨다’는 비판론을 견지하고 있다. 성매매 수요가 현대판 노예제인 인신매매를 부추긴다고 우려하고 있다.

물론 소수 예외는 있다. 독일·네덜란드와 호주의 일부 주(州)가 성매매 업소의 소유와 성매매 알선을 허용하고 있다. 이들 국가는 합법화를 통해 조직범죄의 성매매 개입 방지, 인신매매 감소, 성매매 여성의 근로여건 개선과 같은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기대에 이런 정책을 채택했다. 많은 사람이 이런 정책을 ‘현실적 대안’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독일의 경우 성매매 여성의 60%가 불법 이주 외국인이다. 상당수가 인신매매를 통해 유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관광 명소로 유명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홍등가’ 역시 거대 범죄조직이 개입된 인신매매·마약·살인으로 사회문제가 된 지 오래다. 2006년 시의회는 해당 지역 성매매 업소 3분의 1에 대한 허가를 취소했으나 문제의 본질은 여전하다. 호주에서는 성매매 합법화 이후 도리어 불법 업소가 급증해 조직범죄와 부패 범죄의 온상이 되고 있다. 마침내 2007년 독일과 2009년 호주에서는 성매매 합법화 정책의 실패를 지적하는 보고서가 발간되기에 이른다.

최근 선진국에서 주목받고 있는 대책은 ‘성구매자 처벌’이다. 스웨덴에서 도입한 정책으로 인신매매를 줄이는 효과를 거뒀다. 그러자 노르웨이·핀란드·아이슬란드 등 북유럽 국가들이 서둘러 도입했다. 최근 영국 정부도 성구매 시도에 대한 처벌과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성구매자 처벌은 수요를 억제함으로써 성매매 산업을 축소시켰다. 성매매 합법화건 성매매 금지건 주요 선진국의 정책이 추구하는 바는 같다. 성매매 축소, 탈(脫)성매매 지원, 성매매 여성의 인권보호, 인신매매 근절이다. 한국의 성매매금지법 취지 역시 마찬가지다. 법이 추구하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어느 국가에나 존재한다. 인신매매와 인권유린이 난무하던 한국의 성매매 현장은 성매매금지법 이후 꾸준히 개선돼 왔다. 2009년 성매매 불법 수익 환수액은 전체 범죄 수익 환수액의 26.4%에 달하는 성과를 거뒀다.

성매매가 ‘남성의 성욕 배출의 통로’여야 한다는 생각은 전근대적이다. 성매매금지법은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 필요한 법이다. 어렵사리 도입한 금지법이 이제 막 성과를 거둬 가고 있는 시점에서 이를 거꾸로 돌리려는 주장은 시대착오적이다. 대한민국도 나라의 위상에 걸맞은 선진국 수준의 규범을 확고히 정립할 필요가 있다.

이미정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사회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