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자객의 칼, 15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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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9면

제13보(141~157)=“승패는 병가(兵家)의 상사(常事)”라는 말은 다정하다. 패장에게 큰 위로가 된다. 하지만 그것도 이젠 흘러간 옛 노래가 되고 말았다. 1등이냐 2등이냐를 가리는 결승전의 경우 단 한 번의 승부가 인생을 좌우한다. 그게 현대적 승부다. 추쥔 8단이나 허영호 7단은 아직 그런 생애의 승부를 갖지 못했다. 하지만 오늘은 세계대회 8강전. 여기서 이기면 4강전. 바둑 인생의 가장 높은 곳까지 오르게 된다. 지는 쪽은 꽤 오랫동안 몸살을 앓게 될 것이다.

141과 142의 교환. 그 다음 A로 끊는다는 시나리오였으나 빗나간 수읽기였다. 다 헛수고였다. 전보에서 밝힌 것처럼 끊는 수는 없었다. 허영호 7단은 패배를 예감한 듯 손속이 단호해졌다. 143에 이은 145는 최강의 버팀. 조금 전만 해도 국을 쏟을까 걱정했는데 이젠 목을 가져갈 테면 가져가라고 한다. 추쥔은 상대의 맹렬한 기세에 알았다는 듯 146으로 조용히 물러선다. 큰 곳. 그는 이제 사고 없이 이기는 것만이 목표다.

147로 중앙을 에워싼 뒤 몇 수가 빠르게 오고 갔다. 그중에서도 153이 자객의 칼끝처럼 날카롭다. ‘참고도’ 백1로 연결하면 6까지 중앙의 한 점을 끊어 잡을 수 있다.

문제는 그것으로 계가가 되느냐.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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