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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1966 월드컵 8강 어떻게 갔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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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북한-이탈리아전에서 양 팀 선수들이 한데 엉켜 공중볼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맨 오른쪽은 북한 골키퍼 이찬명. 북한은 박두익의 결승골로 이탈리아를 꺾고 8강에 진출했다. [중앙포토]

‘북한은 1963년에 모란봉팀·기관차팀 등 30개 클럽을 통틀어 가장 우수한 30명을 선발, 인민군에 편입시키고 책임코치 명례연의 지도 아래 맹훈련에 들어갔다. 선수들을 평양의 모란봉 밑에 새로 지은 숙소에 수용해 매일 아침 6시부터 줄기찬 훈련을 계속했다. 밤 10시 이후에는 외출이 금지됐고, 전원 미혼인 이들은 대회가 열리는 66년 7월까지 결혼을 금지당했다’.

전 동아일보 기자 국흥주씨가 77년 출간한 『월드컵 축구-몬테비데오에서 뮌헨까지』(영흥출판사)에 실린 북한 축구 관련 내용이다. 이 책에는 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돌풍을 일으킨 북한 축구대표팀의 훈련 과정 및 포르투갈과의 8강전까지 경기 내용이 담겨 있다. 당시 내·외신 보도를 바탕으로 쓴 글이라 신빙성이 높다.

북한은 63년부터 3년간 약 30회 국제 경기를 했다. 훈련 초기인 63년 당시 아시아 최강이던 버마에 0-3으로 진 것을 빼고는 무패였다. 북한 선수단 65명은 66년 6월 30일, 잉글랜드 월드컵 본선 참가국 중 맨 먼저 런던에 도착했다. 북한은 선수들의 외출을 일절 금지했고, 공개 훈련도 하지 않았다.

북한은 소련과의 예선 1차전에서 상대의 거친 파울 작전에 말려 0-3으로 완패했고, 칠레전에서는 후반 종료 3분 전 박승진의 20m 중거리 슛으로 1-1로 비겼다. 이탈리아와의 예선 최종전에서는 라이트윙 한봉진을 앞세운 빠른 공격으로 주도권을 쥐었고, 박두익의 결승골로 1-0 승리해 8강에 올랐다 (당시는 예선만 통과하면 바로 8강이었다).

북한은 포르투갈과의 8강전에서 박승진이 월드컵 최단시간 골(전반 23초)을 넣는 등 전반 27분까지 3-0으로 앞서갔다. 그러나 에우제비우에게 연속 4골을 허용해 역전당했고, 결국 3-5로 졌다. 리버풀의 한 신문은 ‘북한의 3-0 리드는 온 세상이 뒤집히는 것 같은 충격이었고, 그것이 또다시 뒤바뀐 것은 나비가 다시 번데기가 된 것처럼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고 썼다.

북한은 놀랄 만한 조직력과 스피드, 정신력으로 무장했지만 경기 운영은 단조로웠고 선수단 관리는 순진했다. 에우제비우는 자서전에서 “그들은 체력 관리에 아무런 주의도 기울이지 않았다. 그들은 무절제하게 입에 당기는 대로 매일 먹고 마시고 있었다”고 술회했다.

실제로 북한은 예선이 끝난 뒤 ‘잘 먹어야 잘 뛴다’는 생각에 닷새간 호텔에 틀어박혀 엄청나게 먹었다. 몸은 무거워졌고 스태미나는 급격히 떨어졌다. 북한이 포르투갈전 후반에 주력을 잃고 무너진 이유가 여기 있었다.

정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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