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앵카레 추측’ 푼 그리고리 페렐만 상금 100만 달러 수학상도 안 받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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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은둔을 즐기는 천재 수학자는 이번에도 거액이 걸린 큰 상을 내칠 것인가. 수학계의 최대 난제 가운데 하나였던 ‘푸앵카레 추측’을 풀고도 상을 일절 거부한 채 은둔 생활을 고집해온 러시아 수학자 그리고리 페렐만(44·사진). 그가 최근 100만 달러(약 11억원)의 상금을 주는 수학상의 수상자로 선정되면서 이번에도 상을 거부할지에 세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러시아 일간 ‘로시이스카야 가제타’ 등에 따르면 미국 매사추세츠주에 있는 세계적 권위의 클레이 수학연구소가 18일 페렐만을 ‘밀레니엄 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100만 달러의 상금이 걸린 이 상은 클레이 연구소가 2000년 푸앵카레 추측을 포함한 수학계의 7대 난제를 푸는 사람에게 주겠다며 제정한 것이다. 페렐만이 최초의 수상자가 된 것이다.

제임스 칼슨 연구소장은 “페렐만은 100년 이상 수학자들이 매달려온 과제에 종지부를 찍었다”며 선정 이유를 밝혔다. 칼슨은 페렐만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시상식에 참석해 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페렐만은 자신의 공적을 인정해 준데 대해 고마움을 표시하면서도 6월 초 파리에서 열릴 예정인 시상식에 참석할지에 대해선 답을 주지 않았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페렐만은 2006년에도 푸앵카레 추측을 푼 공로로 수학 분야의 노벨상 격인 ‘필즈 메달’ 수상자로 결정됐으나 수상을 거부했다. 푸앵카레 추측은 1904년 프랑스 수학자 앙리 푸앵카레가 제기한 위상 기하학 문제다. 세계의 수많은 학자가 이 추측을 증명하는 데 매달렸지만 허사였다. 그러다 2002년 미국에서 연수 중이던 페렐만이 해법을 찾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는 세기의 업적을 학술지에 게재하는 대신 인터넷에 올려놓고선 홀연 종적을 감췄다. 그 뒤 몇 년에 걸친 수학자들의 검증 끝에 페렐만의 해법이 옳다는 것이 증명됐다. 이에 따라 국제수학자연맹(IMU)은 2006년 그에게 ‘필즈 메달’을 수여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페렐만은 “나의 증명이 확실한 것으로 판명됐으면 그만이며 더 이상 다른 인정은 필요없다”며 상을 거부했다. 그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시상식에 참석하는 대신 집 근처의 숲으로 버섯을 따러 갔다.

페렐만은 고향인 상트페테르부르크 교외의 낡은 아파트에서 노모와 함께 살며 수학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언론은 물론 외부와의 접촉도 피하고 있다. 이번에도 밀레니엄 상 선정 소식을 들은 이웃 주민들이 축하하기 위해 페렐만의 아파트로 몰려 갔지만 그는 끝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5년 전 페렐만은 자신이 근무하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스테클로프 수학연구소를 그만두고 실업자가 됐다. 이후 자신과 어머니의 연금으로 힘겨운 생활을 해오고 있다. 현지 언론들은 “페렐만이 겨우 먹는 것을 해결할 뿐 병원가기도 힘든 정도의 궁핍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그의 이웃은 현지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페렐만은 이번에도 상을 받지 않을 것이다. 그는 금욕적 생활을 하는 데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철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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