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북한도 미국도 더 유연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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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3년까지 미사일 발사 유예를 약속하고 미국과의 대화를 강력히 바라면서 서울 답방 약속을 실천하겠다는 메시지를 밝힌 것은 한반도 평화를 위해 적지않이 고무적이다.

金위원장이 서방 국가원수로는 처음 방북한 예란 페르손 유럽연합의장국 대표인 스웨덴 총리에게 그러한 의지를 피력함으로써 그의 발언에 한층 무게를 실은 것으로 평가돼 미국 정부의 대응이 주목된다.

결론적으로 말해 우리는 조지 부시 대통령이 이미 언명한 대로 하루 속히 대북정책 검토를 끝내고 기존의 포용정책에 따라 대북관계 개선과 한반도의 평화 방안을 이끌어 내기 위한 건설적이고 실질적인 대북협상에 나서기를 촉구한다. 미국은 金위원장이 미국의 대북협상 목표와는 거리가 있는 유화책을 제시했다고 떨떠름할지 모르지만 페르손 총리의 말대로 이제 "공은 미국 쪽으로 넘어갔다" 고 우리는 본다.

북한이 2003년까지 미사일 발사를 유예하겠다는 것은 대미협상을 촉진하기 위한 유인책이자 그 때까지 대미협상에서 바라는 목적이 달성되지 않을 경우 발사하기 위한 명분 축적의 협박용이라는 이중의 성격이 내포된 것으로 분석된다.

게다가 북한이 전임 클린턴 정부와의 협상에서 제시했던 보상을 전제로 한 미사일 수출 포기와 관련, 그 수출은 무역의 문제라고 말해 오히려 후퇴했다고 미국은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은 金위원장의 언명이 미국과의 대결적 자세보다 협상재개를 간절히 바라는 완곡한 의중을 드러낸 것이라고 판단해야 할 것이며, 클린턴 정부의 대북정책을 큰 틀에서 수용해 대북협상을 재개해야 할 것이다. 북한도 미국과의 관계개선이 자신의 안보보장 및 국제협력을 담보받는 첩경임을 직시하고, 더욱 신축적으로 임해야 한다.

아울러 金위원장은 자신의 서울 답방 약속을 어떤 상황을 저울질함이 없이 실천함으로써 화해의 의지와 유연성을 보여야 한다.

북한이 민족공조를 우리에게 촉구하면서 金위원장이 서울 답방을 미국의 대북정책 검토와 연계된 사항이라는 식으로 말한 것은 이율배반이라고 볼 수 있다. 페르손 총리가 '자주적으로 결정하라' 고 권고한 것도 그 때문일 것이고, 그의 자주적 답방이 북한 변화의 실증(實證)이 돼 대미 관계개선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하리라고 우리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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