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김영무 '아, 오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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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파란불이 켜졌다

꽃무늬 실크 미니스커트에 선글라스 끼고

횡단보도 흑백 건반 탕탕 퉁기며

오월이 종종걸음으로 건너오면

아, 천지사방 출렁이는

금빛 노래 초록 물결

누에들 뽕잎 먹는 소낙비 소리

또 다른 고향 강변에 잉어가 뛴다

김영무(1944~ )의 '아, 오월'

초록의 계절을 맞이하는 마음의 발랄함이 마구 통통 튀어오른다. 아으! 남성인 나도 미니스커트에 선글라스 끼고 거리로 뛰쳐나가고 싶어진다. 몇줄 안 되는 시가 어째서 이렇게 선연한 그림을 그리는가? 우선 행마다 된소리와 거센소리가 배치돼 있는 것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그것들이 느긋해질 틈을 남겨놓지 않는다. 게다가 시각과 청각 이미지가 눈부실 정도로 잘 비벼져 있다. '누에들 뽕잎 먹는 소낙비 소리' 는 그 중 단연 압권이다. 그 소리를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 소리의 짜릿함을 모른다. 당연히 고향도 모른다.

안도현(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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