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리뷰] 상하이에서 부치는 편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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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자기 자신과의 투쟁에서 승리한 것을 축하한다. 곤두박질 속에서도 일어서기만 한다면 반드시 정상에 도달할 것이다. 아주 깊이 아파 보지 않았던 사람에게는 깊고 넓은 동정심이 있을 수 없다. "

지금은 세계적 피아니스트가 된 푸충(傅聰)의 아버지 푸레이(傅雷)가 아들이 폴란드 유학 시절 슬럼프를 이겨냈을 때 보낸 편지의 일부다.

다산 정약용이 유배 시절 아들들에게 쓴 편지를 연상케 하는 이 책은 1950~60년대 중국의 대표적 번역문학가이자 예술사가인 푸레이(1906~66)가 유학 중인 아들에게 쓴 편지 1백10통을 모은 책이다.

아들의 건강.금전.결혼 문제에서부터 음악과 어학공부를 어떻게 하는지 등에 대해 걱정하면서, 예술에 대한 자신의 견해까지 밝히고 있는 이 책에서 모정 이상 가는 부정(父情)을 느낄 수 있다.

애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려 했던 우리시대의 아버지 상을 생각할 때 "아들아, 너를 어떻게 보듬어 주어야 나의 이 회한과 뜨거운 사랑을 보여줄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라는 표현에서 약간의 이질감도 느끼지만, 아버지의 정이 그리운 사람들이라면 책을 읽는 가운데 목이 메는 느낌도 받을 것이다.

푸레이는 아들이 음악에 뛰어난 재능을 보이자 어린 시절부터 아예 학교에 보내지 않고 자신이 짠 커리큘럼으로 교육시킨다.

편지에서 느껴지는 살뜰하고 섬세한 면모와 달리 실제 교육은 무척 엄했다. 조국에 대한 애정도 물론 강조한다. 그 결과 푸충은 아버지의 교육과 기대에 부응하여 세계적 권위의 쇼팽 콩쿠르에서 3등상과 마주르카 연주 최고상을 수상한다.

동양적 운치가 풍부하며 쇼팽.모차르트 연주에 능하다는 평가를 받는 그는 현재 런던에 거주하고 있다.

54년부터 쓰여진 편지는 푸레이 부부가 66년 중국 문화혁명 시절 반혁명분자로 낙인찍히자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 동반자살할 때까지 계속됐다. 때문에 중국 근현대사의 그늘도 함께 읽을 수 있다.

70년대 후반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귀국한 아들 푸충에겐 회한의 눈물과 함께 아버지의 편지 한 구절이 귓전에 맴돌 뿐이었다.

"힘을 다해 나의 경험과 냉철한 이성을 너희들에게 바쳐 너희들의 충실한 지팡이가 되고 싶다. 어느 날, 너희들이 이 지팡이가 귀찮다고 생각할 때 나는 소리없이 종적을 감추어 절대 너희들에게 걸림돌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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