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늘어나는 땅 경계 분쟁 … 소송비용만 4조 추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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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 영광군 옥실리 신옥마을에 사는 정승태씨는 이곳 토박이다. 할아버지 때부터 땅을 일구며 살아왔다. 신옥마을은 지난해 영광군에서 진행한 옥실지구 지적재조사 시범사업 지역이다. 재조사 결과 정씨의 땅은 기존 178㎡에서 507.9㎡로 거의 3배가 됐다. 정씨는 늘어난 329.9㎡를 지적공부에 올렸다. 새로 늘어난 땅에 대해서는 개별공시지가 기준으로 ㎡당 9075원씩, 모두 299만3840원을 영광군에 냈다.

# 부산에 사는 송화자씨는 은퇴 후 전원생활을 위해 전남 옥실리에 2373㎡·1498㎡·1838㎡짜리 세 필지를 샀다. 재조사 결과 세 곳 모두 서류상 면적이 실제와 다르게 나왔다. 각 필지는 3057.8㎡(+684.8), 1097.5㎡(-400.5), 1140㎡(-698)로 조사됐다. 한 필지는 늘고, 두 필지는 줄었다. 전체적으로는 413.7㎡가 줄어 125만1440원(공시지가 기준)을 영광군에서 돌려받았다.

지적 재조사가 전면 시행되면 드러날 모습들이다. 실측 결과 면적이 늘어나고 줄어듦에 따라 돈을 더 내거나 돌려받는 경우가 생긴다. 100년 전 작성된 현행 지적도는 실제 땅과 불일치하는 지역이 많다. 이를 바로잡고 정보기술(IT)을 접목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자는 게 지적 재조사 사업이다.

대한지적공사 직원이 인공위성 시스템을 이용한 지적 측량기를 사용해 토지를 측량하고 있다. [대한지적공사 제공]

◆낡은 지적도, 사회비용 키워=재조사 사업에는 2020년까지 3조4678억원이 투입된다. 현장에 나가 실측을 하기 때문에 측량 수수료가 2조7199억원이나 든다. 지금까지는 지적도와 항공도면 등을 비교해 간접 조사를 해왔다. 수작업에 의존했던 과거에 비해 GPS와 인공위성을 활용하면서 측량의 정확도가 높아졌다. 이 때문에 조사할 때마다 지적도와 실제 땅이 불일치하는 ‘측량 불일치 토지(불부합지)’가 늘어 왔다.

측량 불일치 토지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심각한 수준이다. 한국토지공법학회에 따르면 2005년 기준으로 이와 관련한 소송 비용이 향후 10년간 3조8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됐다.

토지 경계를 확인하기 위한 측량의 비용도 연간 800억~900억원 수준이다. 경계가 중복으로 설정되는 바람에 국고가 낭비되는 경우도 자주 있다. 예컨대 성남 분당구 구미동과 용인 수지구 죽전동은 각각 15필지와 54필지 7만7472㎡의 경계가 중복 설정돼 있었다. 7년 넘게 이어진 분쟁 끝에 정부는 60억원을 중복 보상해야 했다.

엉터리 지적도로 사실상 방치되고 있는 국유지만 16만7000필지, 4억1800만㎡로 추정된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이 차지했던 일본인 명의의 땅 가운데 아직 정리되지 않은 것도 7717만8000㎡에 달한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의 실제 지형과 지적도를 대비한 그림. 가운데 있는 ‘612-1전’의 경우 지적도는 한필지를 나타내지만 그 안에는 도로와 논, 인근 밭까지 어지럽게 얽혀 있다. 전국 3710만8000필지 가운데 553만 6000필지(14.9%)가 비슷한 모양새다. 지적 재조사는 이처럼 실제 지형과 지적도가 일치하지 않는 지역을 재측량해 지적도를 바로잡는 사업이다. 지리정보시스템(GIS) 등 정보기술(IT)을 활용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내용도 들어 있다. [대한지적공사 제공]

◆풀어야 할 난제들=재조사 과정에서 생길 부작용도 만만찮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조심스러워하는 대목이다. 특히 사후정산 과정에서 땅 주인 입장에선 땅이 늘어나도 ‘생돈’이 나간다며 불만스러워할 수가 있다. 땅이 줄어드는 데 따른 불만도 있게 마련이다. 청산은 실측 결과가 서류상 보유 면적보다 클 경우 개별 공시지가 기준으로 정부에 돈을 내고 땅을 정식으로 사들여야 한다. 작을 경우엔 해당되는 만큼 정부로부터 보상받는다. 옥실지구의 경우 대지가 481.1㎡ 늘어 475만원을 납부한 사람도 있다. 납부기준인 공시지가가 대지는 ㎡당 9075원, 기타 지목은 ㎡당 3025원으로 비교적 싸다는 점을 감안하면 무시하지 못할 금액이다. 수도권 등 땅값이 비싼 지역이라면 금액이 훨씬 커진다는 얘기다.

땅이 늘어난 소유자는 납부 고지일로부터 6개월 안에 돈을 내야 된다. 이를 어기면 지방세를 체납한 것과 같은 처분을 받는다. 압류를 당하고, 체납이 계속되면 공매된다. 보상은 공시지가 기준으로 받는다. 따라서 보상금액은 대개 실거래가의 80~90% 수준에서 책정된다. 옥실지구도 대지 실거래가는 ㎡당 9690원으로 공시지가 9075원보다 높다. 수도권처럼 땅값이 비싼 곳은 차이가 ㎡당 수십만원, 수백만원에 이를 수 있다. 이런 곳에선 땅값 합의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자칫 무더기 행정소송으로 이어질 수 있다.

땅 소유주들 사이의 갈등을 푸는 것도 쉽지 않다. 182명이 땅을 갖고 있는 옥실지구도 수십 년간 경계가 애매한 탓에 다툼이 자주 일었다. 2000년 이후 소송도 2건 진행됐다. 군청 담당 직원과 대한지적공사 측량팀은 한 달간 마을에 살다시피 하며 재조사에 반대하는 주민들을 1대1로 설득했다.


권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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