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정부 "반역폭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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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필리핀 정국이 심상찮다.

잇따른 쿠데타설과 계급갈등으로 친.반정부 시위대가 연일 맞서며 극도의 혼란상을 보이던 필리핀에서 1일 새벽 반정부 시위대와 경찰간의 유혈충돌 사태가 발생했다.

전날 군에 적색경계령을 내렸던 글로리아 아로요 대통령은 1일 마닐라 일원에 '폭동사태' 를 선포하고 조셉 에스트라다 지지세력 체포라는 강수를 택했다.

아로요 대통령과 지지세력들은 이번 시위가 단순한 항의시위가 아니라 반역폭동이라고 규정하고 군.경찰 등 물리력을 동원해 이들을 응징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하지만 이미 에스트라다 지지 시위대는 경찰차와 오토바이를 불태우며 대통령궁 진입을 시도하는 등 이성을 잃은 상태이기 때문에 필리핀 사태는 더 큰 유혈상황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크다.

◇ 반대파 체포=아로요 대통령은 1일 오후 "체포된 에스트라다 전 대통령의 세력과 결탁한 정부전복 음모를 밝혀냈다" 며 이에 연루된 주요 인사 체포를 명령했다. 또 마닐라 일대에 '폭동사태' 를 선포하고 폭동진압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날 후안 폰스 엔릴레 상원의원이 체포된 데 이어 그레고리오 호나산 상원의원, 판필로 락손 전 경찰청장, 에르네스토 마세다 전 주미 필리핀대사, 그리고 경찰 주요 간부 두명 등도 체포대상에 포함됐다. 이밖에 에스트라다의 전 대변인 등 몇몇 인사에 대해서는 출국금지 명령을 내렸다.

◇ 유혈충돌=에스트라다 지지 시위대 2만여명은 1일 새벽 가톨릭 성당에서 행진을 시작해 곧장 대통령궁으로 진입을 시도했다. 돌과 몽둥이를 든 시위대가 덤프트럭을 타고 경찰의 3중 저지선을 뚫고 대통령궁 문 바로 앞까지 도달하자 경찰은 공포탄과 최루탄.물대포를 쏘며 시위대 해산을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 한명과 시위대 두명 등 최소 세명이 사망했으며 사진기자 등 민간인 25명, 경찰 12명 등 수십명이 부상했다. AP통신은 심하게 총상을 입은 7명을 목격했다고 전했다.

국군병원에서 이 소식을 들은 에스트라다는 시위대에 진정할 것을 요구하는 동시에 군.경에는 시위대에 발포하지 말 것을 요청했다.

◇ 향후 전망=14일로 예정된 총선이 변수다. 특별한 지지세력이 없는 아로요가 이번 총선을 통해 지지집단을 형성하고 에스트라다 지지세력들이 대거 낙선할 경우 정부가 힘겹지만 상황을 통제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재 에스트라다 지지세력들이 마닐라 근교 등 지방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어 정국의 앞날을 예측하기가 현재로선 지극히 어렵다. 이런 가운데 미국은 1일 필리핀 주재 대사 명의의 성명을 내 아로요 정권 지지의사를 밝혔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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