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병 사망 연 3만명에 희망 켜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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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지난달 30일 오후 3시 고려대 안암병원 동물실험실.

1백㎏ 무게의 송아지를 수술대 위에 올려 놓고 3시간 남짓 걸린 대수술이 끝났다.

"인공심장이 뿜어내는 혈액량이 5ℓ를 넘고 혈압도 모두 정상입니다. "

수술장 간호사의 보고에 서울대 의대 의공학교실 민병구 박사와 고대안암병원 흉부외과 선경 교수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씻었다. 이 병원에서 실시한 39번째 송아지 수술도 성공리에 끝난 것이다. 이날 송아지의 아랫배에는 지름 10㎝, 무게 6백g의 복부 이식형 인공심장이 자리를 잡았다.

체내이식형 인공심장 수술을 놓고 한국과 미국이 불꽃 튀는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인공심장의 효시는 1982년 미국 유타대에서 이식한 자빅. 그러나 자빅은 공기유압식으로 커다란 펌프 장치를 몸 밖에 부착해 환자는 꼼짝없이 침대에 누워 있어야 했다.

엄밀히 말하면 인공심장이 아니었다. 최근 외신으로 보도된 이스라엘의 체내이식형 인공심장도 한쪽 심실만 가동시키는 보조심장에 불과하다.

기계가 완전히 환자의 체내에 이식되는 체내이식형 인공심장의 선두주자는 미국 아비오메드사가 만든 아비오코. 최근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미 언론은 미 식품의약국(FDA)이 사상 최초로 아비오코에 대한 임상시험을 승인했다고 보도했다. 6월 30일까지 미 하버드의대병원.UCLA병원 등 5개 병원이 다섯명의 말기 심장병 환자에 대해 이식수술을 실시할 예정.

그러나 첫 수술의 영예는 한국이 차지할 수도 있다. 고대안암병원.서울대병원 등 6개 국내 병원에서 동물실험을 비롯한 임상시험 절차를 밟고 있기 때문이다. 며칠 내 뇌사자가 기증한 심장을 이식받지 않으면 생명을 유지할 수 없는 말기 심장병 환자들이 나타나면 언제든 수술이 가능하다.

민교수는 "사람의 경우 동물에 비해 감염 등 수술 후 부작용이 적어 인공심장에 의한 수명연장이 2개월 이상 될 것으로 예상하지만 사상 최초의 시도이므로 수술실패에 대한 부담도 크다" 고 털어놨다.

미 국립보건원(NIH)은 세계적으로 20만여명에게 인공심장의 도움이 필요한 것으로 추산했다. 우리나라에선 해마다 3만여명이 심장병으로 생명을 잃고 있지만 뇌사자의 장기기증 부족으로 매년 20여명만이 심장을 이식받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산 인공심장의 가격은 대당 1억~2억원. 그러나 국산 인공심장은 2천만원이면 가능하다. 민교수는 94년부터 보건복지부 국가선도기술사업(G7)의 지원을 받아 인공심장을 개발해 왔다.

홍혜걸 기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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