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고아 돌보는 수덕사 주지 법장 스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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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그저 부처님 밥을 같이 먹는 것뿐입니다. 이렇게 내 밑에서 자라는 것도 모두 인연이지요. "

오갈 데 없는 아이들을 모아 키우고 있는 충남 예산 수덕사 주지 법장(法長.61)스님.

그는 네살부터 열여덟살까지 17명의 남자 아이들을 맡아 기르고 있다. 특별한 계기는 없다. 전에 있던 여러 절에서도 몇명씩 아이를 키웠지만 그가 주지가 된 1992년부터 숫자를 늘려왔을 뿐이다.

"부처님의 재산으로 아이들을 키운다" 는 그는 구태여 고아원이라는 간판을 달지 않겠다는 소신을 지키고 있다.

"간판을 달면 국가보조금은 받겠지만 아이들 스스로에게는 물론이고 다른 사람에게도 절에서 자라는 아이, 고아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쉬우니까요. "

부모 밑에서 자라는 아이들처럼 구김살 없이 키우기 위해 그가 지키는 원칙이 또 하나 있다. 아이들에게 옷 한 벌을 사주더라도 좋은 옷을 사주는 것.

"도와준다고 헌 옷을 가져다 주기도 하고 싸구려 옷을 사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면 혼쭐을 냅니다. 자식에게 사주는 옷과 똑같은 것을 가져오라고 하지요. "

행여 아이들이 열등의식에 사로잡힐까 걱정해서다.

일요일마다 법문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사람의 도리를 가르치지만 정작 그가 아이들에게 바라는 것은 크지 않다.

"진실하고 거짓없이 살면 되지요. 어떻게 살든 다른 사람의 칭찬을 받을 수 있는 사람만 되면 그만입니다. "

그는 "나에게 달려와 매달리는 아이들의 볼을 비비면서 그들의 궁둥이를 한 번 도닥거리는 게 더할 나위 없는 행복" 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한두명도 아니고 여럿을 키우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남의 물건에 손을 대는 아이가 있었어요. 문제도 많이 생기고 마음 고생도 심했지요. 결국 스스로 견디지 못하고 이 곳을 떠나더군요. "

또한 그는 대학생이나 대학원생에게도 학비의 일부를 지원하고 있다. 주변 사람이 추천하거나 본인이 직접 찾아와서 도움을 달라고 하면 내쳐본 적이 없다.

"내 통장이 없어요. 나를 생각하면 단 10원도 도와줄 수 없지요. 베푼다는 것은 자기를 버리는 것입니다. "

그가 94년부터 생명나눔실천회를 통해 펼치고 있는 장기기증운동도 이런 생각과 일맥상통한다.

"장기기증은 일종의 자기희생입니다. 나를 버리면 고통과 욕망에서 벗어날 수 있고 자유와 해탈을 얻을 수 있지요. "

아이들을 똑같은 틀에 넣어 키우려는 세태에 그가 놓는 일침이 따끔하다.

"제가 운영하고 있는 유치원 원훈이 '어린이는 각각 다르다' 입니다. 아이들을 각자의 자질에 맞게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

글=하현옥,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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