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공기업 방만운영 실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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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구청장.시장.군수들이 지역경제의 경쟁력을 높이겠다며 큰소리치고 설립한 지방 공기업 경영은 형편없는 낙제점이다. "

"국민 혈세로 만든 지방 공기업은 퇴직 공직자들의 피신처다. "

29일 감사원 감사에서 드러난 지방 공기업의 경영 성적 실태다. 감사원 관계자들은 "지역개발을 촉진하기 위해 만든 지방 공기업들이 오히려 지방의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고 있다" 고 한심해 했다.

감사를 받은 1백78개 지방 공기업 중 79%인 1백41곳에서 2백40건의 문제점이 지적됐고 적발된 내용도 한결같이 악성(惡性)이다.

◇ 퇴직 인사로 채워진 강남구 도시관리공단=서울시 강남구의 경우 1999년 8월 강남구 도시관리공단을 설립했다. 주차.시설관리 등이 업무인 이 공단은 법적으로는 설립이 불가능한데도 세워졌다.

그뒤 공단 이사장을 비롯해 임직원 16명 전원이 강남구청에서 퇴직한 인사들로 채워졌다.

속초시 역시 99년 12월 속초 시설관리공단을 세우고 임직원 19명 중 18명을 전직 시청 공무원들로 임명했다. 지방 공기업의 설립권한이 99년 4월 행정자치부 장관에게서 지방자치 단체장으로 넘어가자마자 나타난 부작용들이다.

◇ 마구잡이 중복 사업=일부 지방 공기업들은 민간 기업들의 사업 영역을 침범하고 불공정 경쟁도 서슴지 않았다.

대구광역시는 97년 정보통신 용역사업을 한다는 명목으로 대구종합정보센터(자본금 40억원)를 세웠다. 그러나 대구시에는 이미 비슷한 사업을 하는 중소업체가 32개나 있었다.

대구종합정보센터는 그뒤 28건 38억원어치의 계약을 했다. 하지만 그중 22건 27억9천만원어치가 산하 자치단체나 지방 공기업에서 받은 것이었다.

공기업이 특수관계를 앞세워 민간부분을 잠식한 사례다.

서울시의 경우 지하철공사 교육원과 도시철도공사 연수원을 동시에 운영 중이다. 이런 중복 운영으로 해마다 6억6천여만원의 인건비가 낭비된다. 게다가 두 곳 모두 시설이 노후됐다며 건물 신축.이전 계획도 세운 상태다.

부천시 시설관리공단 등 13개 지방공사.공단은 규모가 작고 조직구조가 단순해 상임이사를 둘 필요가 없는데도 상임이사 제도를 만들어 해마다 6억여원의 인건비를 낭비하고 있다.

◇ 모범사례 적어=잘하는 곳도 있긴 하다. 광주시의 경우 체육시설관리공단.교통관리공사.도시개발공사 등 3개 기관을 운영하다가 98년 이를 2개로 통합했다.

99년엔 이 두곳을 광주시 도시공사로 또다시 통합해 인건비를 절감하고 능률을 향상시켰다. 하지만 이런 모범사례는 극히 일부다.

김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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