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확대경] 이은홍 '술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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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존재의 가벼움에 욕망의 육중함을 더하니 소주 한 병의 무게와 같더라. "

『술 권하는 사회』라는 소설도 있었지만 '술 권하는 만화' 도 있다. 1980년대 역사신문.세계사신문 등에 만평을 연재했던 노동운동가이자 만화가인 이은홍의 『술꾼』(사회평론.6천원)이다. 읽다 보면 진짜 '술꾼' 은 물론, 술을 잘 하지 못하는 사람도 슬그머니 술이 당기지 않을까 싶다.

『술꾼』은 형식상으로 보면 작가의 술 편력기다. 어려서 아버지 심부름으로 됫병에 막걸리를 받아오다 호기심에 한 모금 마셨던 게 출발이었다. 부창부수라고, 아내도 술 실력이 엄청 세다. 연애시절 둘이서 안주가 나오기 전에 소주 두 병은 기본이었다. 결혼식 전날도 예외없이 밤새 퍼마신 뒤 그 숙취 때문에 주례 앞에서 손을 부여잡고 "빨리 끝내고 해장이나 했으면" 했던 부부다.

여기서 그친다면 한 주당의 그렇고 그런 얘기라고 치부할 법도 하다. 하지만 『술꾼』은 술을 '세상을 바라보는 창' 으로 승격시킨다. 없이 사는 사람들의 애환과 스트레스에 눌려 사는 소심한 샐러리맨들의 응어리를 술에 얽힌 익살스런 에피소드로 술술 풀어내는 작가의 솜씨가 괜찮다. 가격도 술집의 소주 두병 값(6천원)이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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