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홀] 한국영화 관객집계 제각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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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지난 주말 전국 관객 4백만명을 돌파한 영화 '친구' 관계자들에게 혼란스런 일이 하나 생겼다.

지금 같은 추세라면 한국영화 최고 흥행 기록을 갈아치운 '공동경비구역 JSA' 에 도전할 만한데 갑자기 그 타깃을 바꿔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발단은 이렇다. 영화인회의와 한국영화제작가협회는 지난 23일 영화 '쉬리' 를 제작한 강제규필름의 요청에 따라 '쉬리' 와 'JSA' 의 매출액을 비교한 결과 '쉬리' 가 'JSA' 보다 관객동원에서 앞섰다고 발표했다.

'JSA' 측이 올 초 발표한 전국 관객수는 5백83만명. '쉬리' 보다 3만여명 많은 수치였다. 그런데 이번에 강제규필름측이 'JSA' 의 통계엔 '쉬리' 가 누락시킨 단매(영화 배급사가 지방극장 혹은 재개봉관에 관객수와 관계없이 일정 금액을 받고 필름을 넘기는 방식)지역이 포함됐다고 이의를 제기한 것.

즉 'JSA' 가 정확한 인원파악이 불가능한 단매지역의 매출액을 관객당 1천5백원으로 계산해 최종 통계에 가산했으며, 이런 방식을 '쉬리' 에 적용하면 '쉬리' 의 관객이 6백20만명으로 늘어난다고 주장했다.

영화인회의와 제작가협회도 이를 받아들여 단매지역을 제외한 직배(배급사와 극장이 직접 계약해 관객수에 따라 수익을 5대5로 나눔)지역을 기준으로 할 때 'JSA' 는 5백36만명, '쉬리' 는 5백80만명이 된다고 유권 해석을 내렸다. 역대 최고 흥행영화가 'JSA' 에서 다시 '쉬리' 로 바뀌는 웃지 못할 일이 일어난 것이다.

문제는 이번 사건을 해프닝으로 볼 수 없다는 점. 정확한 관객수를 산정하는 시스템이 부재한 우리 영화계의 빈틈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같은 시비를 비교적 깨끗하게 해결할 수 있는 통합전산망 구축마저 영화 관계자의 이해 충돌로 수 년째 표류하고 있다. 할리우드처럼 관객수가 아닌 매출액 기준으로 순위를 매기는 합리적 방식을 이제라도 도입해야 하지 않을까.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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