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대법관 수를 현재 14명에서 24명으로 늘리는 법원제도 개선 방안을 추진키로 해 찬반 양론이 일고 있다. 이용훈 대법원장 등 대법관들이 이날 오후 대법원에서 열린 전원합의체 재판을 위해 법정에 입장해 앉아 있다. 왼쪽부터 민일영·양창수·안대희·김능환·김지형·양승태 대법관, 이 대법원장, 박시환·이홍훈·전수안·차한성·신영철 대법관. 김영란 대법관은 해외 출장으로 이날 재판에 참석하지 못했다. 법원행정처장도 대법관이지만 재판에 참여하지 않는다. [연합뉴스]
이날 성명 발표는 이례적이고도 전격적이었다. 법원행정처장이 여당을 향해 성명을 발표한 것은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또 대법원과 여권의 관계가 ‘해빙’ 분위기로 접어들고 있었다는 점에서 예상을 뛰어넘은 것이었다. 이 대법원장은 올 초 ‘편향 판결’ 논란 이후 사법부 독립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일부 판사들의 정치적 편향을 시정해야 한다”는 여권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왔다. 그는 지난달 22일 신임 법관 임명식에서 “판사 개인의 독단을 양심이라고 할 수 없다”고 경계했다. 이어 대법원이 진보성향 판사들의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등 법원 내 단체에 대한 실태 조사에 들어갔다.
한나라당 사법 개혁안을 다룬 본지 3월 18일자.
실제 상당수 판사들이 한나라당 개선안에 담긴 법관인사위원회·양형위원회 설치 방안에 대해 집단 반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판사는 “법무부 장관과 대한변협 회장 등이 추천한 외부위원들이 인사권을 가질 경우 판사들도 정치권 등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면서 “그 결과 재판의 독립성도 무너지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대법원장은 이 같은 법원 내부의 의견을 수용해 성명 발표를 재가한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측은 “성명 발표를 주도한 것은 법원행정처”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지만 법원 구조상 대법원장의 의중이 실리지 않고는 성명 발표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다.
이번 충돌을 이 대법원장-현 여권의 껄끄러운 관계와 결부짓는 시각도 있다. 2005년 노무현 정부 때 임명된 이 대법원장이 ‘우리법연구회’ 출신 판사들을 중용하면서 진보성향 판결이 두드러졌다는 게 여권 내부의 시각이다. 지난해 2월 신영철 대법관의 ‘재판 개입’ 논란 당시 이 대법원장이 소장 판사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는 듯한 자세를 취하면서 여권의 인식은 더욱 악화됐다. 같은 해 8월엔 대법관 임명 제청이 계속 미뤄지며 청와대와 대법원 간에 갈등설이 흘러나왔다. ‘편향 판결’ 논란을 계기로 한나라당이 “이 대법원장이 나서서 정리해야 한다”며 대법원장 책임론을 들고 나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렇듯 이 대법원장을 둘러싼 역학 관계로 인해 이번 갈등이 쉽게 풀리기 어렵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법원 관계자는 “현재로선 대법원장이 내놓을 카드가 많지 않다”면서 “권력분립 원칙에 따라 순리로 풀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권석천·전진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