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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경찰청장의 '책임 불감증'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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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1989년 5월 부산 동의대 사태. 학교건물 점거 학생들을 진압하던 경찰관 6명이 화염병에 불타 순직한 사건이다. 당시 "학생이 죽으면 열사(烈士)고, 경찰이 죽으면 뭐냐" 던 경찰관 동료들의 절규는 적잖은 국민들의 공감을 받았다.

그 2년 전 경찰은 엄청난 국민적 분노를 한몸에 받았다. 서울대생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 연세대생 이한열군 최루탄 저격 사망 사건이 터지면서다. 경찰에 대한 일반인의 느낌은 이렇듯 때론 친근감으로, 때론 경계심으로 나타난다.

한 경찰은 "국민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이웃집단이자 민생에 대한 영향력이 어느 권력기관보다 큰 조직이라서" 라고 그 이유를 말한다.

대우차 노조원 과잉진압 사태가 터진 뒤 보름. 지금 국민의 눈에 비치는 경찰의 모습은 어떤가.

사태가 어떻게 수습될까를 주시하던 국민들에게 경찰은 어이없는 모습을 계속 보여줬다. 수뇌부를 방어하는 듯한 경찰대 동문회의 집단 성명, 그리고 경찰총수 비서실장이 개입했다는 소식 등. 그로 인한 경찰 내부의 불협화음까지 드러나 있다. 이 와중에 24일 이무영(李茂永)경찰청장이 사태 이후 첫 입장 표명을 했다.

그는 두가지를 얘기했다. "앞으로 경찰개혁에 최선을 다하겠다" 며 경찰 내부에서까지 불거진 책임론을 일축했다. 구설에 오른 비서실장에 대해선 "양해해 달라" 고만 했다. '이 정도로 넘어가겠다' 고 한 셈이다.

그 두 사건이 처음 보도될 때 한 경찰 고위간부는 "李청장이 물러날 수밖에 없을 것" 이라고 했었다. "과잉진압 사태에다 측근이 청장 구명성 집단행동에 관여했으니 도의적 책임을 피할 수 있겠느냐" 고 단언하는 간부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관측들은 무시되고 있는 듯하다. 이에 따라 또 다른 마찰음이 나올지도 모른다.

李청장은 99년 11월 취임 이래 경찰이 국민을 서비스 대상으로 섬기도록 경찰 개혁을 이끌어 왔다. 경찰관들의 근무여건도 대폭 개선시켰다.

하지만 그렇다고 폭력진압 및 조직 일부와 측근의 부적절한 행동이 양해되는 건 아니다.

흔들리는 경찰조직을 위해, 무엇보다 국민의 신뢰 회복을 위해 李청장은 다시 해법을 내놓아야 할 것 같다.

강주안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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