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일기] '나대로식' 육아휴직 비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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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여성계와 재계가 모성보호법안의 기업 부담 비용 산출을 놓고 아전인수(我田引水)식 공방을 벌이고 있다.

출산휴가를 현행 60일에서 90일로 늘리고 태아검진휴가.육아휴직 급여 등을 신설하는 모성보호법안이 발효될 경우를 전제로 재계와 여성계가 각기 추정한 기업의 비용부담액은 격차가 메울 수 없을 만큼 크다. 여성계는 기업의 추가 부담이 1천3백66억원이라고 계산한 반면 재계는 8천5백억원을 제시했다. 서로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기준으로 계산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육아휴직 부분이다. 출산 후 아이를 기르기 위해 택하는 육아휴직 급여를 여성계는 6백32억원으로 계산한 데 비해 재계는 7천5백60억원을 제시해 무려 7천억원 가까이 차이가 난다.

계산의 근거와 관련, 여성계는 '근거있는 통계자료가 없다' 며 지난해 출산 여성근로자의 20% 정도가 육아휴직을 한 것으로 추정했다. 남성근로자의 육아휴직은 제외했다. 반면 경총은 출산 여성뿐 아니라 출산 여성의 배우자인 남성근로자 모두가 육아휴직을 하는 것으로 산출했다.

여성계 관계자는 "1999년 무급 육아휴직제 도입 이후 남성근로자 신청자가 2명에 불과하다" 며 "고용이 불안한데 급여의 30%를 준다고 누가 육아휴직을 신청하겠느냐" 며 계산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이에 비해 경총측은 "유급 육아휴직을 법제화하면 신세대가 주 대상이라 남성 육아휴직이 급증할 것으로 보고 출산 여성의 배우자인 남성 근로자 전원을 계산했다" 고 설명한다.

시행 시기를 보는 시각도 판이하다. 경총은 "재계도 법안 자체는 공감하나 경제가 어려워져 시기상조" 라는 주장인 반면 여성계는 "경제가 호황을 누렸던 93년에도 출산휴가 확대를 건의했지만 재계는 시기상조만 주장했다" 며 더 이상 늦출 수 없다는 입장이다.

안타까운 것은 재계와 여성계가 주장만 내놓을 뿐 대화와 협상이 없다는 점이다. 양측이 모두 모성보호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는 만큼 국회를 중심으로 머리를 맞대고 시기와 방법을 논의한다면 해답을 못 찾을 리 없다. 지금처럼 자기 주장만 고집한다면 모성보호법의 합리적인 개정은 점점 멀어질 뿐이다.

김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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